애플이 9년만에 새로운 제품 라인인 비전 프로를 출시했다. 현재 여러 반응들이 엇갈리고 있는데, 나는 이 비전(Vision) 라인업이 결국 성공하는 제품군이 되리라 믿는다. 이번주 글에서는 그런 내 주장의 근거들과 더불어 비전 프로 출시를 보며 느꼈던 생각 몇 가지를 다뤄보겠다.
먼저, 왜 비전 프로는 성공하는가?
Thesis: 컴퓨팅의 영역을 현실 속 입체로 끌어오는 것은 우리의 오랜 염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전 프로가 멋진 기술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뭘 할 수 있을지를 잘 모르겠다고 비판한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어릴적 즐겨봤던 두 가지 영상을 들고 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쿠리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작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았던 폴더블 태블릿 기기 쿠리어(Courier)의 컨셉 영상.
Corning - A Day Made of Glass: 코닝은 아이폰에 쓰이는 고릴라 글래스를 제조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유리 제조사. 코닝이 바라본, 최첨단 유리로 꾸며질 인류의 미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영상.
이 두 컨셉 영상의 공통점은 우리가 컴퓨터를 대하고 사용하는 행위를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입체’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는 점에 있다(쿠리어는 2D긴 하지만, UI가 마치 현실의 노트북과 메모장을 이용하는 것과 사실상 동일하게 디자인 되어있으므로).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컴퓨터에서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규칙이나 조작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5살적부터 할 줄 알았던, 무언가를 손으로 만지기, 돌리기, 밀기, 주무르기, 던지기 등을 이용해서도 높은 차원의 작업과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
위 영상을 봤다면 알겠지만(이걸 독자분들께 이해시키기 위해 영상들을 들고 온 거기도 하다), 이처럼 컴퓨팅 방식이 인간이 타고난 조작법을 닮아갈수록 컴퓨터를 이용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훨씬 쉬워지고 재밌어진다. 당연한 것이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명제에 의거해 컴퓨팅의 역사는 발전해 왔다. 콘솔 커맨드 창에 명령어를 입력하던 CUI에서 마우스로 드래그&드롭을 할 수 있는 GUI로, 또다시 마우스와 키보드의 시대에서 손가락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멀티터치 스크린으로.
비전 프로가 제시한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은 이제 그 다음 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납작한 화면에서 벗어나 공간 상에서 컴퓨터적인 조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컴퓨팅이 한 층 더 인간이 원래 하는 행동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원래 앉아서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것도 건드려보고, 저것도 만져보고 하는 일이 더 자연스러운 종족 아니던가! 그렇기에 어찌보면 난 LLM과 만능 챗봇 비서로 가득찬 세상보다는 공간 컴퓨팅이 훨씬 더 직관적으로 와닿는 컴퓨팅 미래의 청사진이라고 판단한다1.
여기까지 읽었다면 대충 내가 왜 공간 컴퓨팅이 컴퓨팅/UI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지는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 또한 존재한다.
“그래, 컴퓨팅이 개념적으로는 그렇게 발전할 것이라고 치자.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런 발전이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 건데? 그렇게 컴퓨팅이 발전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전에 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공간 컴퓨팅 덕분에 할 수 있게 되는 건데?”
앞선 질문,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는 명확하다. 인간 본성에 더 가까워진 컴퓨팅은 수많은 컴퓨터 상에서 이뤄지는 작업들의 진입장벽을 허물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준다2.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보자. 이건 하나의 패턴이다. 컴퓨팅이 CUI(커맨드창, 콘솔)로만 가능했을 때에는 컴퓨터가 제공하는 멋진 연산/정보청리 기능들을 극소수의 인구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GUI가 등장하고 더 이상 복잡한 명령어들을 외워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많은 non-tech-geek들이 자기 집 책상에서 디지털 아트를 만들고, 자동화된 회계 장부를 작성하고, 이메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동일한 현상이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발생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연령대 또한 더 넓어지게 된다. 오늘날의 청소년, 어린이들은 PC시대의 동격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고 더 많은 작업들을 컴퓨팅을 통해 해결한다. 이제 2-3년 안에 우리는 공간 컴퓨팅이 이런 변화의 물결을 불러오는 것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살짝 애매해지는 것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비전 프로 덕분에 우리가 전에는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혹은 더 편하게) 할 수 있게 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킬러 앱(Killer App)의 존재 유무에 관한 지적이다. 이 궁금에 대해서는 나보다 Andy Matuschak이 더 명료하게 적어놓은 내용이 있어 그것을 공유하고자 한다. Andy Matuschak은 현재 프리랜서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로, iOS의 개발 과정에 관여했던 인물 중 한명이다.
On its surface, the iPhone didn’t have totally new killer apps when it launched. It had a mail client, a music player, a web browser, YouTube, etc. The multitouch paradigm didn’t substantively transform what you could do with those apps; it was important because it made those apps possible on the tiny display.
아이폰 또한 출시 시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킬러 앱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최초로 깔려있던 앱들은 이메일 클라이언트, 음악 재생 프로그램, 웹 브라우저, 유튜브 등이 전부였다. 멀티터치 패러다임은 이 앱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변화시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 앱들이 작은 모바일 화면에서 돌아갈 수 있게 만든 것이었고, 그 점에서 멀티터치 패러다임이 중요했던 것이다.(…)
Relatively quickly, the iPhone did acquire many functions which were “native” to that paradigm. A canonical example is the 2008 GPS-powered map, complete with local business data, directions, and live transit information. You could build such a thing on a laptop, but the amazing power of the iPhone map is that I can fly to Tokyo with no plans and have a great time, no stress. Rich chat apps existed on the PC, but the phenomenon of the “group chat” really depended on the ubiquity of the mobile OS paradigm, particularly in conjunction with its integrated camera. Mobile payments. And so on. (…) I expect Vision Pro will evolve singular apps, too; (…) Will its story be more like the iPhone, or more like the iPad and Watch?
상대적으로 빠르게, 아이폰은 실제로 그것의 패러다임에 “고유한” 기능들을 하나하나 얻어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2008년도에 만들어진 GPS 기반 지도 앱이다. 이 지도 앱은 지역 상점 데이터, 길 안내, 실시간 교통 정보 등을 제공했다. 물론 당신은 이런 앱을 랩톱에서 작동하도록 만들 수도 있겠지만, 아이폰만이 지니고 있는 멋진 점은 내가 (아이폰을 들고) 갑자기 무계획으로 도쿄로 날라가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랩톱에서 지도 앱을 켜고 돌아다닌다면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없다). PC에도 좋은 채팅 앱들이 존재하지만, “그룹 채팅”이 발달하는 데에는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카메라 사진 촬영과의 연결이 매끈한 모바일 OS 패러다임이 큰 역할을 수행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언제 어디서나 내 사진을 찍어 바로 그룹 챗에 보내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룹 채팅의 개념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 이밖에도 모바일 결제 등과 같은 수많은 예시들이 존재한다. (…) 나는 비전 프로 또한 그 자체에 고유적인 앱들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과연 비전 프로는 아이폰에 더 가까운 것이 될까, 아니면 아이패드나 애플 워치에 더 가까운 것이 될까?3
정리하자면, 비전 프로는-만약 그것이 애플이 약속한 기술과 UX를 모두 제공할 수 있는 장치가 맞다면-컴퓨팅을 한 단계 앞으로 진보시키는 제품이 될 것이다. 그 진보는 이념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은 ‘비전 프로’ 자체보다는 왜 ‘공간 컴퓨팅’이 성공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밑에 달려올 두 항목들을 통해 왜 애플이 만든 공간 컴퓨팅 기기가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은지를 논해보겠다.
애플은 고객들이 뭘 좋아할지를 안다, 고객들보다 먼저
“A lot of times, people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you show it to them”
―Steve Jobs
아이패드, 애플워치, 에어팟(+맥스). 이 제품군들의 공통점은 최초 공개되었을 때 많은 비판을 마주했지만 현재는 애플 매출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템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애플 에어팟, 무선이어폰 시장 점유율 54%...14조 벌었다 → '20년 기준 엔비디아, 어도비의 매출보다 많아
손목 장악하는 '스마트워치'에…"명품마저 짐 싼다" → 2019년 애플워치의 연간 출하량은 3070만 대로 스위스 시계 회사의 총 판매량(2110만 대)를 뛰어넘었다
이러한 현상은 애플의 사업 전략 특징에 대해 많은 것들을 시사하는데, 일단 첫째, 애플은 사람들이 실제로 손에 쥐었을 때 무엇을 좋아할지를 매우 잘 간파하고 있으며, 설사 그것이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것이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믿게끔 유도할 수 있는 기술을 지니고 있다.
애플워치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를 기억하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아이폰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손목 위에서 한번 더 하기 위해 수십만원짜리 디지털 워치를 살 필요가 있냐고 질문했었다. 에어팟 또한 마찬가지. 인스타그램 게시물 댓글들에서 콩나물처럼 생긴 이어폰을 끼고 다닐 사람이 있겠냐고 말하던 것이 떠오른다. 결국 그들이 틀리고 애플이 옳았다.
따라서 애플이 9년만에 새로운 신제품을 공개할 때에는 어지간한 확신 없이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비전 프로가 분명히 사람들이 좋아할 제품일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비전 프로를 좋아하도록 교묘하게 설득할 수가 있으리라는 확신.
또다른 애플의 사업 전략 특징은 이들이 젊은 세대의 힙스터 문화와 깊게 맞닿아 있으며 테크 기업으로는 드물게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힙스터들로 이루어진 팬덤은 애플이 고가의 화려한 신제품을 내놓으면 일단 산다. 특히 비전 프로처럼 뜨거운 감자라면 더더욱 산다. 이들 중 누구는 그것을 정말로 필요로 하고 누구는 아무 생각도 없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광적인 소비가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재생산되며 마치 새로운 시대의 한 페이지가 펼쳐지고 있는 듯한 광경을 연출하리라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은 언제부터 애플의 신제품이 유행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왜 유행하고 있는지, 정말로 편리한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그저 그들은 서서히 애플이 만들어놓은 마케팅의 소용돌이 안으로 빠져들어갈 뿐이다.
물론 아무리 마케팅이 강력하더라도 제품 자체가 정말로 쓸모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잘 팔리는 상품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위에서 서술했듯이 난 공간 컴퓨팅이 컴퓨팅의 미래라고 생각하기에, 일단 애플이 비전 프로를 세상에 많이 뿌려놓으면 사람들은 점차 그 효용에 열광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본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애플의 해자(moat)는 기술력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
반드시 ChatGPT처럼 혁신적인 기술을 탑재한 제품만이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더 깊게 이해하는 팀이 인간에 더 친화적인 UI/UX를 탑재한 제품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 또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일례로 슬랙과 이메일은 같은 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졌지만 슬랙의 마법같은 UI가 모든 차이를 만들어냈다. 애플의 앞선 성공작들이었던 아이폰, 아이패드, 맥 또한 결국 기존에 존재하는 기술들을 가장 인간 친화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재포장한 것 뿐이다. 특히 아이패드는 아이팟, 아이폰에 이용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그저 화면을 키웠을 뿐이다. 그러나 그 키워진 화면이 모든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인간 친화적 재해석’을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기업 중 하나가 애플이다. 기업의 인간 이해력은 계량화될 수 있는 항목은 아니기 때문에 그 근거를 논리적으로 대기 어렵지만, 애플이 그동안 출시해온 제품들과 잡스 개인의 캐릭터성이 애플에 얼마나 큰 궤적을 남겼는가만 생각해봐도 답을 알 수 있다.
그런 애플이 만든 비전 프로이기 때문에 이 제품은 타사의 XR 헤드셋들이 넘볼 수 없는 해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다. 특히 이런 강점이 잘 드러난 기능 중 하나가 eyesight/passthrough feature.
밖에 있는 사람이 헤드셋 사용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eyesight), 헤드셋 사용자 또한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음(passthrough)은 헤드셋을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만들어준다. 지금까지 오큘러스는 마니악한 게임기에 머물렀다면 비전 프로는 XR 헤드셋이 개성 표출/자기 표현의 영역까지 진출하게 해주었다.
실제로 비전 프로는 살짝 과장을 보태서 좀 까리한 디지털 스키 고글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건 진짜 지금까지 그 어떤 XR 헤드셋도 이뤄낸 적 없는 성과.
이렇게 왜 비전 프로가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다. 이것들 이외에 추가로 들었던 감상평을 적어보겠다.
때로는 최초가 되는 것보다 최고가 되는 것이 중요하기도
구글 글래스, 홀로렌즈, 메타/오큘러스 퀘스트 시리즈… 퍼스트 무버 어드밴티지(First Mover Advantage)가 이번에는 먹히지 않았다. 먼저 신대륙을 개척한 이들보다 9년간 폐관 수련을 하며 내실을 키운 애플이 결국 승기를 잡을 것이다. 스타트업과 테크 씬에서는 Move First, Think Later 마인드가 통용되지만 그것이 불변의 진리는 아닌 듯 하다.
메타는 오히려 수혜자가 될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아이폰 없었다면 지금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거다. 아이폰이 앞장서서 스마트폰 판을 키워줬고, 그 판 안에서 애플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안드로이드가 스며들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애플의 제품을 이용하고 애플의 감성을 소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폰과 애플의 제품이 나서서 공간 컴퓨팅을 normalize, 그 다음 애플이 채우지 못하는 구석들을 메타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메타 이 분야에서 열심히 해왔기에.
메타는 더 이상 VR/AR 분야의 1등(1등은 아마 애플이 가져가겠지)은 아니겠지만 수치적으로의 매출과 사업 규모는 더 커지게 될 것이다. 그게 사업적인 관점에서는 더 나은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최근 인상깊게 본 래퍼 키드밀리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힙합엘이] 본인이 스타가 되면 힙합씬은 알아서 살아나요 - 키드밀리
”래퍼들이 힙합을 살리는 게 아니라 자기부터 좀 스타가 되면 힙합은 알아서 살아나요. (…) 각자의 몸집을 불리고, 각자 멋있어지고, 각자 관리하고 하다 보면 힙합은 알아서 커요. 장르를 누군가가 키운다는 거는 되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임영웅이 ‘내가 트로트를 살리겠어’ 하고 트로트가 살아난 건 아니잖아요. 힙합은 항상 사람들 머릿속에 있어요. 머릿속에 이렇게 들어있는 거를 딱 스위치를 올려줄 스타들이 필요한 거지.”
우리 머릿속에 항상 공간 컴퓨팅과 확장 현실에 대한 생각은 있었다. 그동안 스위치를 눌러줄 스타가 없었을 뿐이지. 근데 이제 애플이 등장했다.
마니악을 메인스트림으로
위에서 적은 것과도 많이 겹치지만, 역사를 선도하는 흐름은 마니악의 영역에 있던 것을 힙함과 메인스트림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행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애플은 PC를, 테슬라는 전기차를 마니악 → 메인스트림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애플은 다시 한번 XR 헤드셋에 관해 동일한 마법을 부리려고 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만들어내는 기업들, 기업인들은 무엇이 다를까? 깊이 파볼 주제이다. 왜 쿡과 애플은 해내는데 저커버그와 메타는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실제로 이런 건 직원들과 주요 임원들의 인문학적 역량에 달려있다고 본다. 애플 직원들은 정말로 다른 테크 회사 직원들에 비해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자주 서 있는 사람들일까?
거버넌스 프리미엄-Apple Exceptionalism
얼마전에 페이스북에서 야놀자와 여기어때의 매출은 상당히 비슷하지만 기업가치가 30배 차이나는 이유가 야놀자는 업계의 트렌드를 이끌고 기준을 설정하는, 거버넌스 파워가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었다.
이번 애플 사례를 보면 확실히 어떤 기업이 시장의 ‘거버넌스’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실질적인 사업적 영향력이 되는 것 같다 (즉 프리미엄/알파/엣지가 된다). 우리는 흔히 시장경제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동량의 공급을 제공하더라도 누가 그것을 제공했는지에 따라 수요가 바뀔 수도 있다.
즉, 지금 사람들 반응 보면 정말 ‘애플이 했기 때문에’ 비전 프로가 홀로렌즈, 퀘스트에 비해 더 먹히는 요소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 그야말로 막강한 거버넌스를 지닌 Apple Exceptionalism이다. 그런데 이걸 단지 마케팅/브랜드 파워라고 치부하면 곤란하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정량적 측정도 되지 않지만 이건 명백히 실재하는 회사의 경쟁력이고 차별점이다.
이런거 보면 애플은 팬덤층, 인문학적 역량, 거버넌스 파워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핵심 역량이 참 많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눈에 잘 안보이는 핵심 역량을 지닌 회사일수록 강한 회사라고 할 수 있다. 핵심 역량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카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니까.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면서 참조했던, 비전 프로와 관해 좋은 인사이트들을 얻을 수 있는 소스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아래에 있는 링크들만 다 읽어봐도 비전 프로의 실체와 애플의 생각에 대해 대충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긱뉴스] Apple Vision Pro의 첫 인상: It Works & It’s Good
[전종현의 인사이트] 애플 비전 프로, Spatial Computing의 시대를 열다
[디지털투데이] 애플 비전 프로를 굳이 살 필요가 없는 이유
[Andy Matuschak] Notes on Vision Pro - HN에서 572포인트를 얻었다, 영어가 편하다면 꼭 읽어볼 것을 추천
이 지점에서 비전 프로를 AR이나 VR 기기가 아닌 공간 컴퓨팅 기기로 브랜딩한 애플의 철학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전 프로를 유구한 발전의 역사를 지닌 컴퓨팅의 타임라인 위에 올려놓으면서 많은 가시적/내재적 정당성과 명분을 챙겨간 것 같다. 메타와의 차별점도 확실히 생기고.
이는 어찌 보면 애플이라는 회사가 영위하는 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애플은 최종적으로는 도구를 만드는 회사다. 어떤 도구? 인간이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 결국 애플 업의 본질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더 창의적으로 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대다수의 빅테크 기업들도 마찬가지. 사티아 나델라도 MS의 미션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 모든 기업에게 힘을 주고, 더 많은 걸 달성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질문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아이폰은 게임 체인저, 아이패드와 애플 워치는 성공적인 side 산업 정도로 볼 수 있다. 사실 셋 중 어느 하나처럼 발전한다고 해도 이미 그 자체로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