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결정을 하나 내렸다.
발간하는 뉴스레터의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는 Deokhaeng’s Life였던 것을 Deokhaeng’s Upwind로. Upwind라는 확실한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브랜딩도 더 잘 되고 사람들이 기억하기에도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결단했다.
그렇다면 Upwind란 무엇인가? 한국어로는 맞바람; 바람이 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 바람을 맞으며 날아오르는 것.
바람을 타지 못해 땅으로 추락하는 것과 바람을 맞아 위로 날아오르는 것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선택’에 있다. 추락하는 비행기는 자신이 어디에 도착할지를 선택할 수 없다. 그냥 떨어지게 되는 곳에 안착해야지. 그렇지만 바람을 맞으며 공중에서 비행하고 있는 비행기는 땅 밑을 천천히 둘러보다 자신이 착륙하고 싶은 곳에 내릴 수 있다. 즉, 도달하게 되는 선택지의 스펙트럼과, 착륙에 이르기까지 내리는 크고 많은 선택들에 자유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다름이 있다.
나의 롤모델 중 한 명인 폴 그레이엄은 What You'll Wish You'd Known이라는 글 (언젠가 소개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진짜 진짜 좋은 글이다. 일독을 권한다) 에서 우리는 인생을 맞바람을 맞으며 비행하는 글라이더처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생을 설계할 때, 언제나 우리가 착륙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하도록 의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할지 결정할 때, 금융학을 전공하면 높은 확률로 졸업 후 금융과 관련된 일을 할 것이 확실하지만, 수학을 전공하면 금융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수학자가 될 수도,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수학을 전공하기를 선택하여, 졸업 후 내가 걸을 수 있는 인생의 길을 “오직” 금융권으로만 한정짓지 않는 것이 바로 Upwind적인 인생 설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도 너무 많다. 젊을 때에는 최대한 다양한 옵션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여 내 삶을 “무언가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구석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다. 그런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이 뉴스레터라고 생각했다 - 말 그대로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의 접점을 담은 저작물.
이 뉴스레터에서는 주로 스타트업과 테크업계 이야기를 다루지만 종종 힙합 노래가 등장할 수도, 철학 이야기가 나타날 수도 있고,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리뷰를 심도 있게 담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훗날 나의 다양한 착륙지들이 될 수 있는 소품들을 간직한 이 뉴스레터에 Upwind라는 이름을 선사하기로 했다.
그럼 각설하고, 본업으로 넘어가 보겠다. 오늘의 Upwind가 준비한 소품들은 -
인터넷의 바벨탑은 붕괴할 때가 되었다
엄청 좋은 글, 내 가치관이나 생각과 부합하는 글을 찾아서 공유한다. 위의 “The Internet wants to be fragmented” 라는 포스트를 클릭하면 읽어볼 수 있다. 최근 Substack 내부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한 것 같다.
핵심 내용들을 몇 줄로 요약해보자면…
“인터넷의 초창기에는 인터넷이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였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이 인터넷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었다.”
초창기의 인터넷은 여러 개의 조각난(fragmented) 커뮤니티와 사용자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각의 그룹들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즐거운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메일링 리스트, IRC 채팅 채널 등.
그러나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네트워크가 방대해지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광장과도 같은 대형 소셜 미디어에 내몰리게 되었다. 그런 광장과도 같은 인터넷에서, 우리는 자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의견들에 노출되고, 논쟁하고, 쉽게 피로해진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가 중앙화(centralization)되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지만, 그 실험은 실패했다. 비록 대형 소셜 미디어가 많은 수의 부자를 탄생시키기는 했지만.
결국 사람들은 초창기의 인터넷과 같은, 자신과 마음이 맞는 소수의 사람들을 찾아 다시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 디스코드 채널과 같은. 소셜 미디어 제국이 쌓아올린 바벨탑은 무너진다.
내가 처음 페이스북에 가입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즈음, 그러니까 2010년 초중반이었다. 그때는 실제로 알고 지내는 친구 30~40명하고만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고, 우리는 모두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올리며 장난쳤다. 그 이전에는 비슷한 포지션으로 카카오스토리가 있었었고.
어느 순간부터 내 페이스북 친구는 몇 백명으로 불어났고,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에는 온갖 스팸 광고와 기사 링크, 인사이트 글, 진지한 글과 허세 가득한 글들이 모두 넘쳐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프로필 피드에 게시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것이 트렌드이자 멋이 되었고, 초등학생 시절 느꼈던 페이스북의 재미는 점차 희미해져갔다. 이제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순수하게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로부터 뒤쳐지고 싶지 않은 불안감(FOMO) 때문에 이용한다.
나는 언젠가 지금의 페이스북, 트위터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만한, 그러면서도 우리의 정신 건강에 이롭고 사람들 간의 깊은 생각과 마음을 잘 전달해줄 수 있는 소셜 미디어가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내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직은 그 방법을 모르겠다. 위 글의 저자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트위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트위터를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을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나도 그러한 불안감과 막연함에 빠져있는 것일지도.
그런 의미에서, 트위터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각광받는 마스토돈은 주목할 만한 시도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용해볼 것을 추천한다.
GPT를 이용한 추천 시스템
나는 개인적으로 발달된 인공지능과 GPT와 같은 NLP를 이용해서 좋은 퀄리티의 추천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매우 많다. 물론 지금도 세상에는 좋은 추천 시스템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유튜브나 틱톡 알고리즘이 그렇고 (좋은 알고리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는 debatable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발전할 여지가 큰 도메인도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웹 페이지 추천이나 영화 추천, 뉴스/블로그 아티클 추천 등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특히 웹 페이지/아티클 추천은 클로바 디스코와 같이 네이버 등의 대기업도 도전한 영역이지만, 아직 극적인 우위를 점한 곳이 없다고 판단된다.
그런 의미에서 GPT API와 Airtable을 이용해 간이 영화 추천 시스템을 만든 이 시도는 대단히 흥미롭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xx가 나오고 xx 배경의 영화가 뭐였지?” “xx한 느낌의 xx 장르 영화, xx 나라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와 같은 서술을 인풋으로 주면 그에 해당하는 영화들을 보여준다. 심지어 코딩을 한 줄도 하지 않고, 노코딩 툴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지금은 GPT를 영화에 적용했지만, 이것이 웹 페이지/컨텐츠 추천에 쓰이게 된다면 가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할지를 생각해보라!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웹 페이지를 사전에 크롤링해서 모아놓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나처럼 인터넷 방송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의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을 돕는 유용한 툴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일대기에 대해서 다루는 흥미로운 글 추천해줘. 주로 테슬라에 관한 내용이 많으면 좋겠어.”
“테크업계 종사자들을 저격한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을 모아서 보여줘.”
“희망을 얻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에세이들 10편 정도 모아줘봐.”
이런 요청을 넣었을 때 내가 딱 보고 싶은 유형의 웹 페이지를 가져다주는 인공지능 친구가 있다면 난 기꺼이 사용할 것이다.
StumbleUpon은 한 때 큰 인기를 끌었던 크롬 익스텐션 서비스인데, 익스텐션에 달린 버튼을 클릭하면 사용자가 좋아할만한 페이지를 화면에 자동으로 띄워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서비스는 한창 잘 나갈 때에는 페이스북의 접속 트래픽을 능가할 정도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결국 효과적인 수익화에 실패하고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GPT와 NLP가 더욱 발달하면, 새로운 시대의 StumbleUpon이 태어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가 웹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을 한번 다시 뒤바꿔놓을 것이다.
액티비전블리자드 COO의 이적
web3 시장에 흥미로운 소식이 있어서 하나 가져왔다. 액티비전블리자드의 President/COO 를 맡았던 Daniel Alegre라는 사람이 BAYC, CryptoPunks, Otherside 등으로 유명한 유가 랩스(Yuga Labs)의 새 CEO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Daniel Alegre는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JD를 받았으며, 액티비전블리자드의 COO가 되기 이전에는 구글에서 16년을 일하며 리테일, 글로벌 파트너쉽, 수익화 등의 업무를 주로 맡은 듯 하다.
이 사람이 하락장 속에서도 web3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진실로 알 길은 없겠지만, 유가 랩스의 다음 행보를 궁금하게 만드는 뉴스인 것은 분명하다.
Happy Holidays
아마 다음주에는 간략한 2022년 회고로 찾아올 것 같다. 감성적이고 몽글몽글한 이야기들은 거기에 몰아서 하도록 하겠다.
어쩌다보니 이번주 뉴스레터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송을 하게 되었다. 딱히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라 여러분에게 좋은 선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해주시면 좋겠다!
어렸을 땐 크리스마스 시즌을 참 좋아했었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군인이라 그럴 수도 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는 따뜻하고 설레임 가득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라며 이번 주 글을 끝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