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을 하나 남기자면, 몇 주 전부터 극초기 팀(팀원 5명 미만)에 엔지니어로 합류하여 일하고 있다. 굉장히 재밌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아마 곧 만들고 있는 제품을 공개적으로 런칭할 것 같은데, 그때가 되면 뉴스레터를 통해서도 홍보하도록 하겠다.
다음은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컨텍스트에서 커서를 전폭적으로 활용하여 코딩을 하며 내가 느낀 것들이다.
개발자의 수가 적어질 것은 당연해 보인다.
AI의 도움을 받으니 예전이면 하루 걸려서 해냈을 일을 이제는 1시간이면 끝낼 수 있다. 아직 대학생인 내가 이 정도라면, 현업에서 경험을 더 쌓은 시니어들은 그 효율 향상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니 기업 입장에서 이전보다 더 적은 수의 개발자를 고용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SWE 취업 시장은 갈수록 더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개발’이라는 일이 완전히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일 큰 것은 신뢰도. 나는 커서가 코드를 생성해도 바로 그것을 가져다 쓰기보다는 자세히 살펴본 다음 내 코드에 활용한다. 커서의 정확도가 높음에도 이렇게 하는 까닭은 혹시 AI가 생성한 코드를 바로 썼다가 다른 사람들이 만든 코드와 엉켜서 원래 프로덕트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AI 개발자가 정말 너무 완벽해져서 전세계적으로 그 도구의 신뢰도에 대한 완전한 컨센서스가 생기지 않는 이상, 이러한 행위는 모든 회사와 개발자들에 의해 이뤄질 것이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AI이더라도, 결국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람이다.
유지 보수 및 코드 보완. 한번 짠 코드를 개선시키고 에러를 고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 특히 그것이 내가 짜지 않은 (다른 팀원이 짠) 코드와 결합되어 돌아갈 때 더욱 그렇다. 커서에게 물어보면 사소한 에러들은 잘 고쳐주겠지만, 에러나 개선의 범위가 보다 확장될수록 코드의 작동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탁월함을 발휘한다.
확장성(Scalability),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의사결정들. 프로덕트를 만들 때 기술적으로 제일 어려운 것은 10명이 쓰던 제품을 만명이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AI가 대신해줄 수 없다 (아이디에이션이나 방향성 제시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되지만!). 프로덕트의 특성, 고객들의 특성, 회사의 확장 전략, 그리고 현재 떠앉고 있는 기술 부채 등 매우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야 하기에.
물론 커서는 엄청나다. 위에 적은 내용들은 이미 만들어진 회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사례다.
파운더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아직 큰 규모의 ‘회사’를 만들지 않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험해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CS 배경지식이 많지 않더라도 AI를 이용해 쓸만한 제품을 만들고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뒤의 단계로 나아간다면 이제 점차 상술한 문제들이 드러날 것이다. 정리하자면 회사 생애주기의 앞단은 완전히 AI가 대체 가능하고, 뒤로 갈수록 아직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인생 설계를 해야 하나?
AI 때문에 커리어를 고민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워진 세상이 찾아왔다. 이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내가 가장 하고 싶고, 그렇기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흔히 우리 부모님 세대 때에는 의대보다 물리/공학 분야가 훨씬 유망한 것으로 여겨졌고 관련 전공의 대학 입결도 비교적 높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당시 내 진로를 결정해야 할 사람이었다면 “이런 이런 이유 때문에 앞으로는 의사가 아주 좋은 직업이 될 것이고, 난 의학 분야에 인생을 베팅하겠다”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설령 그런 가설을 떠올렸다 하더라도 그 가설에 100%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세상은 변수가 무한히도 많은 함수이고, 때문에 전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에 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한다. 다시 말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AI 때문에 그 불확실성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증폭되었다.
그래서 난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에 맞춰 세밀한 커리어 계획을 세우기보다, 그냥 내가 가장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온 열정을 쏟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에 올인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계속 하다 보면, 그 항목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나만의 깊이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깊이를 지닌 사람은 뭐라도 이루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