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면 한 주제를 심도있게 파는 특집 기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번주는 여러 개의 작은 소식들을 묶어놓은 글이다. 낚시로 느껴졌다면 미안합니다 🙇 어떻게 하면 이메일 오픈율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도중, 신문 헤드라인처럼 제일 흥미로운 소식 한 줄을 제목에 걸어놓으면 독자분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지 않을까 싶어서 실험을 해본 것이다.
내용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가볍게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커리어]
퀀텀펀드 설립자 짐 로저스의 <Street Smart>를 읽고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짐 로저스를 들어봤을 거고, 그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인 퀀텀펀드가 4200%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올렸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의 책 <Street Smart>를 매우 즐겁게 읽었다. 그의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들에 대한 회고와 투자철학을 버무린 자서전이다. 여러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두 차례 이뤄진 그의 세계일주, 그리고 그가 배움과 투자를 대하는 자세.
로저스는 지금 자신의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지내고 있다.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리엔탈리즘이나 동양 문화에 대한 동경심에 빠져 있는 억만장자들은 많이 봤어도 아예 동양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미국인 기업가는 거의 처음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로저스의 이주는 세계의 부가 서양에서 동양, 그 중에서도 중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판단에 기반한 것이다. 중국 본토가 아니라 싱가포르에 자리잡은 이유는 싱가포르가 대기 질과 의료 환경이 좋으면서도 중국어가 쓰이는 사회이기 때문이라고1.
그는 자신의 아내와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진행한 세계일주인 밀레니엄 어드벤처를 통해서 싱가포르에서 살기를 결정했다고 한다. 밀레니엄 어드벤처 이전에도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가로지르는 등 매우 오랜 시간을 세상을 둘러보고 체험하는 일에 사용했다. 이렇게 여행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로저스의 가치관은 그의 투자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결국 투자 또한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그에 올라타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선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직접 피부로 산업 현장과 시장을 느끼며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페이지와 차로 세계일주하는 동안,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 짐 오닐이 ‘브릭스’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는 전화를 받았다. (…) 물론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한 말이었다. (…) 짐 오닐이 인도에 가보지도 않고 인도의 장점을 찬양하는 동안, 페이지와 나는 두 달 반에 걸쳐 자동차로 인도를 횡단했다.
결국 가장 큰 자산은 오감으로 부딪히며 쌓은 깊이라는 이야기. 나 또한 무척 동감한다.
둘째, 그와 조지 소로스가 어떻게 다른 타입의 투자자였는지.
나는 항상 내 스스로가 트레이딩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의 뇌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왔고, 그래서인지 본격적으로 주식을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로저스가 자신과 소로스를 비교한 대목을 읽고 나서 이러한 감정이 조금 해소되었다.
소로스는 시점 선택과 트레이딩 감각이 탁월했지만, 나는 트레이딩 감각도 신통치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나는 주로 조사를 맡았다. 나의 관심사는 바위를 들추는 일로서, 세계의 상황을 조사하여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일이었다.
(…)세계를 향한 끝없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나는 닥치는 대로 조사했다. 우리는 세계에 기회가 있으며, 기회를 발견하면 투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역사, 지리, 전통, 부조리 어느 것에도 속박당하지 않았다. 기회가 보이면 세계 어디든지 투자했다.
투자를 단순히 숫자와 타이밍에 기대어 돈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끝없는 호기심”을 계속해서 충족시키는 일로 생각하는 로저스의 발상이 마음에 들었다. 투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그렇게 될 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실상을 알 수는 없지만, 정말로 투자가 저런 일이라면 꽤나 멋있는 것 같다.
[테크]
Data Lake vs Warehouse, 그게 대체 뭔가
개발 트렌드를 딱히 정기적으로 챙겨보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Data Warehouse, Data Lake라는 키워드들이 많이 보이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어떤 개념인지를 확실하게 공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뉴스레터에 잘 정리되어있는데,
Data Warehouse: 정제된, 관계성을 띄는 데이터를 저장해 놓는 저장공간. 데이터들이 애초에 구조화된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에 검색, 분석 등을 위한 쿼리를 돌리기가 용이하다. 상장 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Snowflake가 이 분야의 강자(Snowflake도 Lake 쪽 제품을 만들고 있기는 하다).
Data Lake: 관계성을 띄고 있던 말건, 구조화/계층화가 되어 있던 말건, 일단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호수에 빠뜨리듯이 넣어놓는 저장공간. Databricks가 대표적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최근에 Lakehouse라고 해서 Warehouse와 Lake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형태의 제품을 밀고 있다.
당연히 장기적으로는 데이터를 넣을 때는 Lake지만, 추출할 때는 Warehouse 형태인 저장소가 뜰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무지성으로 온갖 데이터를 던져 놓아도 AI가 알아서 정제하고 분류해서 정리해놓는.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면서, 만약 내가 CS 안에서 한 가지 세부 분야를 정해 특화해야 한다면 데이터(DB)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 게, 데이터 분야는 무조건 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환경 오염 발생시키지 않고 고갈되지 않는 석유와 같다. 어떤 IT 서비스이든 간에 고도화와 스케일업을 하려면 데이터 기술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더 빠른 쿼리, 더 저렴한 저장공간에 대한 수요는 멈추지 않는다.
지식 노동자를 돕기 위한 LLM 스타트업과 “Information Debt(정보 부채)”
세콰이아, USV 등 굴지의 VC 소속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이 선정한 지켜봐야 할 AI(주로 생성형) 스타트업 리스트. 나는 LLM의 활용 가능성 중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창의성 보완’에 지속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주제와 가장 밀접한 회사인 Dust에 눈길이 갔다.
It’s obvious that Large Language Models (LLMs) will increase the productivity of knowledge workers. But it’s still unclear exactly how. Dust is on a mission to figure that out. Since LLMs won’t be of much help in the enterprise if they don’t have access to internal data, Dust has built a platform that indexes, embeds, and keeps updated in real-time companies’ internal data (Notion, Slack, Drive, GitHub) to expose it to LLM-backed products.
Dust co-founders Gabriel Hubert and Stanislas Polu sold a company to Stripe and worked there for five years. They witnessed firsthand how fast-growing companies can struggle with scale. They’ve seen what they call “information debt” creep in, and they’re now focused on applying LLMs to solve some of the major pain points associated with that.- 본문 중
결국 회사 내에서 자체적인 LLM 기반 서비스(검색엔진 등)를 돌리기 위해서는 회사의 내부 데이터들을 외부의 LLM 서비스에 연결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지 걔들이 회사의 지식들을 학습해서 지식 노동자를 보조할 수 있으니까. Dust는 회사의 지식이 담겨있는 Notion, Slack, Drive, GitHub 등의 외부 서비스에서 지식들을 실시간으로 추출해와 LLM이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인프라를 제작한다.
회사의 비전을 설명하면서 “Information Debt(정보 부채)”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게 굉장히 와닿았다. 기술업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Tech Debt(기술 부채)”에서 따온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의 귀찮음 때문에 활용이나 정리 등을 해놓지 않은 지식들이 쌓이고 쌓여 훗날 병목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기술 부채나 정보 부채가 정량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지만,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들이 실재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만약 어떤 제품이 (LLM Based이든 아니든) 회사의 정보 부채를 정말 손에 잡힐 정도로 확실하게 해결해준다면, 고객들은 분명히 그 제품을 이용하기 위해 돈을 지불할 것이다.Dust의 공동창업자 2명-Gabriel Hubert, Stanislas Polu-은 Stripe에 회사를 매각한 후 거기서 5년을 일했었다. 그 이후 Dust를 시작한 것. 한국에서도 ex-토스, 배민 출신 등이 인정을 받는 것처럼 미국에서는 ex-Stripe가 일종의 브랜드가 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에어비앤비, 우버 이후로 가장 금전적/규모적으로 성공한 스타트업이면서 구직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MAGA보다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 Stripe니까.
[기타 산업]
조선해양업의 본질은?
최근 테크 밖의 분야들을 탐색해보면서 조선해양업에 대해 공부해보고 있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찾아서 공유.
“LNG선 수주행진, 조선기자재 산업 등에 과잉공급 시한폭탄 될 수도”
조선업은 수주 중심 산업이고, 대형 선박들은 한번 진수되면 평균 30년 정도 이용된다. 따라서 자연스레 조선업은 일종의 사이클을 따르는 (예전에 제작했던 선박들이 슬슬 퇴역하게 되면 다시 수주량이 증가, 한번 수주를 많이 따내고 나면 다시 감소) 기간 산업이 될 수 밖에 없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추세대로 LNG선의 발주 확대될 경우 2030년이면 LNG선의 운반용량이 운반해야 할 세계 가스 물동량보다 31%나 초과할 것이라고 분석된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2030년부터는 초과수주로 인한 LNG선의 수주절벽 혹은 불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 된다면 국내 조선사의 타격이 우려된다. 이들이 클락슨리서치 보고서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의 경우 지난해를 기준으로 세계 조선 주문의 37%를 수주했는데 LNG 운반선의 경우 전체 주문의 70%를 따낼 정도로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들은 국내 조선업이 수요예측에 실패한 2015년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고유가로 해양플랜트, 시추선 등을 수주하며 호황을 확신했던 국내 조선업은 초저유가 사태가 발발하면서 신규 발주량이 급감, 글로벌 오일사들의 발주 취소와 인도 연기로 큰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 본문 중
다른 모든 조건(노동력, 자본력, 기술력 등)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조선업의 본질은 데이터를 통한 수요예측일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ESG 유니콘, Watershed
VC 인턴 당시, 해외에서 최근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들을 리스트업해보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찍어 리서치하는 업무가 있었다. 그때 되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유니콘 중 하나가 Watershed라는 곳인데, 일명 탄소 회계(Carbon Accounting)이라고 불리는, 기업의 탄소 배출량 모니터링/예측 SaaS를 만드는 곳이었다. 이 회사에 대한 Contrary Research Report를 최근에 읽었다. 그리고 탄소 회계라는 생소한 산업에 대해 얻어갈만한 인사이트가 몇 가지 있는 것 같아 가져와봤다.
Contrary Research Report - Watershed
Watershed의 예상되는 ARR은 연 100억 정도, 밸류에이션은 $1B. 과연 이 밸류에이션을 충족시킬만큼의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회사들의 탄소 회계 수요가 늘어나느냐는 순전히 정부의 규제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빡세지냐에 달려 있다. 이런 시장(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 아닌 당위에 의해 조성되는)은 많이 살펴본 적도 없고 굉장히 신기한 것 같다. Watershed가 어디까지 성장할지가 궁금해지는 이유.
이 회사의 기원도 Stripe에서 비롯된다. 세 창업자가 Stripe에서 만나기도 했고,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Christian Anderson이 Stripe의 기후/탄소 관련 제품 라인인 Stripe Climate을 개발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이 Stripe Climate에 대해서는 예전에 Upwind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Stripe 출신 창업자들이 시작한 회사인만큼, Watershed는 Stripe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Stripe는 현재 Watershed의 고객사 중 하나이다.주목할만한 점은 이 신생 산업에서도 Watershed의 경쟁사가 몇 곳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Persefoni, Sinai라는 곳인데 Persefoni는 자산운용사들에 특화된 제품을, Sinai는 교통수단, 건설업, 광업 같이 중공업 분야의 회사들을 위한 탄소 회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과 비교해 Watershed는 좀 더 SaaS나 컨슈머텍 기업처럼 가볍고 엔드 유저와 직접 연결된 DTC(Direct-To-Consumer) 회사들을 주로 타겟한다.
Contrary Research는 한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산업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Value Chain이나 공정 과정을 추적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DTC 회사들을 주 고객으로 두고 있는 Watershed가 다른 고객군으로 진출하려면 소프트웨어 자체를 거의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 것으로 이야기한다. 즉,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와 협업툴 SaaS를 제공하는 회사에 필요한 탄소 회계 프레임워크가 아예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보고서에서 Watershed는 자신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Vertical 내에서는 Scale할 수 있지만, 더 많은 Vertical을 확보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하는 회사로 묘사된다. 날카로운 분석. 이런거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아주 조금씩 키워가는 느낌이다.
[끝마치며]
이제 극장에선 다 내렸겠지만, 휴가 나갔을 때 봤던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정말 엄청난 명작이었다. 성인 되고 나서 봤던 영화 중에 최고인 것 같다. 디즈니 플러스 구독하시는 분들 있으면 꼭 봐야 한다.
<오펜하이머>도 꼭 극장에서 보고 싶은데 가능할지를 모르겠다. 개봉 후 보게 되시는 분들 있으면 후기 좀 알려주세요.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공교롭게도 나 또한 싱가포르가 매우 흥미로운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면서 꼭 싱가포르에서 다양한 일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왜 싱가포르가 그토록 흥미로운지를 뉴스레터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Data Lake SaaS를 만드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에 근미래에는 Data LakeHouse(Databricks에서 만든 용어)가 많이 각광 받을 것 같아요. Data Warehouse는 제약 사항(미래에 어떻게 데이터를 써야할 지 모르지만 schema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점 - ETL)이 많고, Data Lake는 데이터를 그냥 S3/GCS에 넣기만 한다면 관리가 시간이 지나면 불가능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두 가지의 중간인 Data LakeHouse(ELT가 주요 usecase - Databricks가 Bronze, Silver, Gold 테이블에 대한 용어도 만들었는데 이 업계에서는 이제 표준 텀이 된 느낌)가 필요한 이유인 것 같아요. Data 쪽 관심 많으시면 Big Data 관련 테크가 어떻게 발전했고, 현재 Apache Hudi, Apache Iceberg, Delta Lake이 어떻게 이 시장을 먹으려고 싸우는지 한 번 보시면 굉장히 흥미로울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