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지난주에 이어서 내가 만들었던 서비스, 아호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아직 1편을 읽지 못한 분들은 빨리 보고 오시기를 강력 추천한다.
Ahoy! - 모든 웹 페이지를 잇는 단 하나의 댓글 시스템을 꿈꾸다 (Ep. 1)
피드백 받기 - 즐거움과 어리숙함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호이를 처음 사용해본 친구 서넛은 서비스를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이들은 실제로 아호이를 이용해 자신들이 재밌게 본 웹 페이지에 댓글을 달고, 서로를 멘션했으며, 다른 친구들이 방문한 웹 페이지를 호기심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이들이 처음 익스텐션을 설치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고도 계속되었다. 친구 몇은 아예 특정 페이지들에 나를 언급해놓은 다음 “아호이 확인해라”라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낼 정도였다.
그 상황에 나는 무척이나 들뜰 수 밖에 없었다. 나와 내 친구들을 하나의 friend group이라고 상정한다면, “사람들은 친구들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웹 서핑을 하고 싶어할 것이다”는 기획 초기에 설립한 가설이 최소한 하나의 friend group 내에서는 먹힌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 가설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극명했다: 더 많은 friend group들을 아호이 유저층으로 확보하는 것.
이에 우리 팀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호이 초대장을 발송하고, 이들의 의견과 피드백을 체계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페이스북 그룹까지 개설했다.
그리고 이 그룹은 상당한 효력을 보였다. 아호이를 열성적으로 사용하던 친구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개선사항을 그룹에 올려주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렇게 무언가가 굴러가는 건가 싶은 느낌이 들 즈음에…
예상치 못한 이슈가 하나 발생했다. 베타 테스팅을 의뢰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아호이에 큰 보안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아호이에 중요한 개인정보가 많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용자들의 비밀번호가 혹여나 유출되면 큰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곧바로 베타 테스팅을 종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짧디 짧은 베타 테스팅 기간 동안 의외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실제 상용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보안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은 물론이고, 생각보다 많은 사용자들이 개발진은 상상치도 못한 디테일에서 불편함을 감지한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비스 잠정 중단 직후, 우리는 재정비에 돌입한다. XSS 취약점을 해결하고, 피드백 받은 부분들과 UI 디자인을 조금씩 고친다. 아마 이 과정에서 서비스 이름도 나르디스에서 아호이(Ahoy!)로 바뀌게 된 것 같다. 아호이는 보통 뱃사람들이 항해 도중 육지를 찾으면 외치는 소리인데, 우리는 그것이 우리 서비스와 매우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유저들도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다가 살펴볼만한 가치가 있는 섬(웹 페이지)을 발견하면 아호이를 외치듯 댓글을 달아보라, 대충 그런 의미.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가 끝나자, 우리는 아호이를 진짜 각잡고 세상에 공개하려고 마음먹는다. 베타 테스팅에서 정식 런치로 전환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채널을 통해 홍보도 해볼 요량으로 친구 한명에게 광고 영상 제작까지 의뢰한 것이다. 고등학교 동기이자 뛰어난 영상 편집자였던 성헌이는 아호이의 초기 유저 중 한 명이었는데, 고맙게도 우리를 도와 아래와 같은 작품을 뽑아내주었다.
참고로 나레이션은 내가 직접 했다. 나도 글 쓰는 것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이 영상을 봤는데, 다시 봐도 아호이가 무엇을 위한 도구인지를 명료하면서 직관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성헌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재차 전한다.
이렇게 나와 내 주위 귀인들의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이 모여 아호이가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20년도 초여름, 우리는 새단장한 아호이와 광고 영상을 더 넓은 유저 층에게 정식으로 공개했다. 이제 세상이 부여하는 성적표를 받을 차례였다.
현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우리가 필요로 한 만큼의 애정을 아호이에게 선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써본 사람들의 반응을 정량화해보진 않았지만, 10명중에 6~7명은 우리의 아이디어가 무척 재밌고 엄청 큰 가능성이 보인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줬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우리는 1~2달 동안 신규 유저들의 행동을 살폈는데, 대부분이 재미로 댓글을 몇 번 달아본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목격했다. 리텐션 레이트가 매우 낮았다는 거다. 이유는 명확했다. 아호이는 본질적으로 소셜 서비스인데, 신규 유저들은 서비스 안에서 그들이 함께 수다를 떨 만한 다른 유저를 찾지 못한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초기부터 아호이를 다같이 사용했기 때문에 소통할 다른 유저가 풍족했지만, 우리와 전혀 관계 없는 유저들에게는 이런 시나리오가 해당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기획 단계에서 예견하지 못한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페이스북/트위터/핀터레스트/인스타그램 세대 이후로 등장한 신규 SNS 스타트업들이 망하는 대부분의 이유도 충분한 네트워크 효과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니까.
다만 문제를 예측했다고 해서 그것을 해결할 역량을 우리가 가진 것도 아니었다. 이것저것 자잘한 실험들을 해봤지만, 그 어느 것도 내 friend group 밖의 신규 유저들을 아호이의 열성 유저로 탈바꿈시키지는 못했다.
네트워크 효과 확보 이외에도 우리는 또다른 장애물에 봉착하기도 했는데, 이는 사용자들이 아호이를 각각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크게 세 유형의 사용자가 존재했다:
혼잣말형: 주로 웹 서핑에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잡생각이 많은 타입. 남이 보든 말든, 친구들이 답글을 달던 말던, 인상깊게 본 웹 페이지가 있다면 그냥 자신의 감상을 열심히 남기고 다니는 유형. 이 유형은 아호이를 일종의 북마크/메모 앱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눈팅형: 타임라인을 주로 사용하며 친구들이 어떤 웹 사이트에 댓글을 달고 다니는지를 확인하며 재미를 느끼는 유형. 이 유형은 댓글을 자주 생산하는 사용자들은 아니었다.
언급형: 자신의 감상을 일방적으로 기록하기보다는 친구와 같이 보고 싶은 재밌는 컨텐츠를 찾았을 때 친구를 언급하려고 아호이를 활용한 유형. 이들은 아호이를 일종의 메신저 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왜 문제였냐 싶을수도 있지만, 실제로 상당히 큰 고민거리였다. 각 유형의 사용자별로 아호이에 기대하는 신규 기능과 개선점이 달랐고, 때로는 그것들이 상호 배타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시간과 개발 역량이 현저히 부족한 고3 아마추어 개발자들이었다. 사용자들이 바라는 기능을 모두 다 구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비스가 어떤 정체성을 지닐 것인지-다시 말해 어떤 유형의 사용자에 집중할 것인지-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는데, 위 세 가지 중 어떤 것이 제일 좋을지 고르는 것도 무척 어려웠다. 이 과정에서 팀원들 간의 견해 차이가 발생하기도 했고.
서비스의 기능(feature)은 서비스의 본질을 규정하지 않는다. 한 가지 명확한 기능을 만들어 놓아도 100명의 사용자가 있다면 그것을 100가지 다른 의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이때 확실하게 배웠다.
이렇게 우리가 큰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입시철이 다가왔다. 자연스레 나와 팀원들에겐 신경써야 할 다른 일들이 늘어났고, 아호이는 고3 한 여름 밤의 꿈으로 잊혀져 가는 듯 했다.
나의 스무살 봄
그러나 나와 아호이의 인연은 그렇게 끝날 것이 아니었다. 위 사건들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21년도 2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는 오킷(OKIT)이라는 위치 기반 소셜 미디어 앱 스타트업에서 인턴십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나와 함께 아호이를 개발했던 친구 중 한 명인 성준이와 같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상당히 내 인생에 있어 기억될만한 사건이었는데,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랬다.
첫째로는 성준이와 일주일 중 5일을 붙어 있게 되면서 창조적이고 신박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는 거다. 성준이는 나처럼 스타트업과 기술에 관심이 많은 친구이면서도 예술가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소유한 인물이다. 점심시간, 출근길 혹은 퇴근길을 함께하다 보면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아호이가 대화 주제로 떠오르곤 했다. 고3때 미처 시도해보지 못한 마케팅 전략 혹은 개발하지 않았던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들 그리고 아쉬움이 우리의 머릿 속에 쌓여갔다.
둘째로는 이 때의 인턴십을 계기로 우리 둘의 개발 역량이 많이 좋아졌다. 오킷에서 일하며 웹 개발 전반에 대해 많은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론트와 백이 어떻게 구분되며 백을 어떻게 GCP/AWS와 같은 클라우드에 올려서 구동시킬 수 있는지, API는 어떻게 설계하며 JWT 따위를 붙여서 보안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지, 깃에서 브랜치를 나눠서 프로젝트 관리를 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등등을 모두 이 시기에 배웠다. 물론 본업 개발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고등학교 때와 비교하면 가히 퀀텀 점프를 이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3 때는 1~2주 걸리면 만들 웹 앱을 3~4일만에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같이 일을 하다 보니 분업에 있어서 손발도 척척 맞는 상태에 이르렀다. 때마침 이때 우리는 대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시간도 남아도는 잉여들이었다. 남는 게 시간인 갓스물 둘이 영감과 그 영감을 현실로 만들 기술을 손에 쥐었으니, 아호이 2.0 개발이 시작되는 것은 당연한 차순이지 않았겠는가.
다음 주에 이어서…
스무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때 자주 들었던 음악이 떠오른다.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오 안녕하세요, 디스콰이엇에도 공유해 주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