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세대
1920년대와 2020년대
마음이 심란하거나 힘들 때마다 항상 글을 썼다.
원래 그런 상태일수록 글이 잘 써지지 않는데, 어쩌다가 한번씩 그 와중에도 글이 잘 뽑히고 스스로에게 심리적 위안이 되는 날이 있다.
그래서 오늘 짧게 무언가를 써보려 한다.
Roaring 20s & The Lost Generation
고등학교 미국사 시간은 대체로 지루했지만 1920년대 시절 미국 이야기는 항상 좋아했다.
방황과 허무주의 속의 쾌락과 문화적 세련됨이라는, <위대한 개츠비>로 대변되는 재즈 시대의 정신이 멋있게 느껴졌어서.
역사적 정확성과 엄밀함은 약간 미뤄놓고, 난 지금의 세상이 미국의 1920년대와 비슷한 점이 꽤 많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의 1020들은 세계 대전을 겪지는 않았으나, (생존 걱정이 많이 없어진 현대 기준으로) 기묘한 일들을 참 많이 겪으며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당장 02년생인 나만 해도, 고3 때는 코로나가 터졌고 군 복무 중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사춘기에서 성년기로 넘어가는 동안 미국에선 트럼프와 바이든이 번갈아 집권했고, 한국에선 두 번의 탄핵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매일 아침 링크드인과 X에서 AI 종말론과 낙관론을 번갈아 읽고, 퇴근 후에는 앞으로의 삶을 걱정하는 친구들과 비슷한 불안을 나눈다.
“몇 년 안에 결판난다…UBI를 주는 편에 설지 받는 편에 설지! 시간이 얼마 없다.”
-최근 한 친구가 나에게 해준 말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상이 마냥 망해가고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전 세계 어딘가(주로 SF)에서는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신흥 부자들이 탄생하고 있고, 샘 알트만과 탄은 AI가 불러올 인류적 풍요를 설파하고, 주식 시장은 대체로 우상향을 이어간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불안과 동시에, 묘하게 호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감각 역시 함께 안고 있다.
마치 청소년 시절을 세계 대전과 함께 보내고, 종전 후 성인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은 세상 앞에 서야 했던 1920년대의 ‘길 잃은 세대’가, 100년이 지난 지금 2020년대에 다시 나타난 듯한 기분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을 계속 품고 산다. 그리고 오늘, 그 고민에 쐐기를 박는 링크드인 포스트를 하나 읽었다.

사실 이 포스트가 앞에서 이어온 고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체감하는 이 ‘길 잃음’이 창업과 기술 생태계에서 특히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건 사실이고, 내가 그 세계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이 포스트에 담긴 열변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을 건드렸을 뿐이다.
상당히 매서운 표현으로 가득한 글인데, 댓글에 보면 공감하거나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았다. 저 글에 동의하던 아니던을 떠나서, 그냥 우리 모두가 똑같이 길을 잃은 상태에 놓여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는 다같이 길을 잃었나 보다.
그래서 어떡하죠?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이 글은 있어보이게 시작하긴 했지만 뾰족한 결론이 있는 글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절망하기 위해 쓰는 글 또한 아니다.
위에서 1920년대 이야기를 했는데, 1920년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두 사람은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면서도, 동시에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흔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여기서부터 조금은 위안이 된다. 지금처럼, 아니 어쩌면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웠을 시기에도 사람들은 결국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냈고 살아갔으니까.
그럼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았을까.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특별히 강하고 긍정적이거나 초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피츠제럴드는 재산을 탕진하고 알코올 의존에 시달렸고, 헤밍웨이는 평생 강박 속에서 살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끝까지 길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간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그들은 작품을 남겼다. 오히려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는 문장들이 있다. 두 사람과 관련해 내가 좋아하는 구절들을 가져와봤다.
“말하자면 스콧 피츠제럴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청춘기의 실로 아름다운 발로였다. 그 숨결이 공중에서 순간적으로 신화로 결정화한 것, 그것이 바로 피츠제럴드이자 그의 작품들이었다.
(…)
스콧과 젤다1는 돈을 물처럼 쓰고, 젊음을 무기로 무궤도한 생활을 계속했다. 술을 마시면 예외 없이 엉망으로 취했고, 취하면 예외 없이 신문에 실릴 만한 일을 저질렀다.(…)
1929년 대공황으로 미국의 꿈 자체가 무너져버린 것과 거의 동시에 스콧 피츠제럴드의 찬란한 신화 역시 그 정묘하고도 아름다운 빛깔을 급속도로 읽고 낡은 흙벽처럼 흐슬부슬 무너져내렸다.
(…)
피츠제럴드는 재능이 뛰어난 작가였지만, 요령이 좋은 작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실의에 젖어 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피츠제럴드가 훌륭한 작가라는 사실은 제아무리 현실에 가혹하게 시달려도 글에 대한 신뢰를 거의 잃지 않았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은 글을 씀으로써 구제되리라 굳게 믿었다.
(…)
피츠제럴드는 죽음 직전까지 매달리듯 계속해서 소설을 썼다. ‘이 소설만 완성하면…’하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
마치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인 불행한 제이 개츠비가 후미진 맞은편 물가에서 점멸하는 등대 불빛을 유일한 버팀목 삼아 오탁으로 가득한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듯이.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독자가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멸망의 미학’이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는 ‘구원의 확신’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콧 피츠제럴드: 재즈 시대의 기수>
“For a true writer each book should be a new beginning where he tries again for something that is beyond attainment.
진정한 작가에게 작품 한 편 한 편은 성취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해 다시 시도하는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
Writing, at its best, is a lonely life. For he does his work alone and if he is a good enough writer he must face eternity, or the lack of it, each day.
가장 좋은 시나리오 하에서도, 글을 쓴다는 것은 외로운 삶이다. 글을 쓰는 자는 그 일을 홀로 수행하며, 만약 그가 충분히 솜씨있는 작가라면 매일같이 영원성, 혹은 그것의 부재를 마주해야 하기에.”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인생에서 최고로 기뻤어야 할 순간에도 어딘가 공허해 보였던 헤밍웨이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끝까지 매달리다 생을 마친 피츠제럴드.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남긴 것들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받을 것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창업가,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취준생, 전공과 미래를 두고 망설이는 학생들과 학부모들까지. 더 나아가 어느 나라에서 어떤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할지조차 쉽게 정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똑같이 끝내 figure out 하지 못했던 100년 전 위인들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조금은 희망적으로 들린다.
이건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어쩌면 중요한 건, 끝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길을 잃은 상태여도 괜찮다. 그 상태로 계속 살아가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나가자.
2020년 그리고 30년대에도 누군가는 결국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노인과 바다>를 써낼 것이다.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멋진 것들이 나올지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각자만의 ‘멸망의 미학’을 능가하는 ‘구원의 확신’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피츠제럴드의 아내


좋은 글 고맙습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들이군요.
제가 어렸을 시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기술의 진보와 미묘한 번영이 역설적이게도 제겐 소외와 괴리로 느껴지며, 끊임없는 방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덕거리고 있었는데. 저만 그런줄 알았습니다.
큰 공감은 물론이고, 인용 해주신 분의 성토 글에도 그리고 덕행님이 나아갈 여정과 그 여정에 앞선 정신에 많은 영감과 힘을 얻습니다.
항상 응원하고, 동경하고, 언젠가 덕행님이 계신 곳, 저도 그토록 갈망하는 곳에 같이 서서 함께 해볼 기회를 얻어보길 갈망하며, 팬심으로,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작은 메세지 남겨 봅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매우 건강하고 행복하십쇼!
저도 말씀처럼, 길을 잃어도, 뭘해야 할지 몰라도, 그냥 괜찮으니 계속 뭐든 하며 나아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