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부터 시작해서 나는 아호이라는 이름의 작은 SNS를 자체 개발해본 이야기를 뉴스레터에 적고 있다. 아호이는 크롬 익스텐션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소셜 네트워크로, 사용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웹 페이지에 댓글을 달 수 있게 해준다. 아호이 유저들은 익스텐션을 통해 다른 사용자들이 해당 웹 페이지에 단 댓글을 구경할 수도 있고, 답글을 달 수도 있으며 친구를 그 웹 페이지에 멘션(@)할 수도 있다. 이런 아호이는 우리 모두의 웹 서핑 경험을 보다 연결된 것으로 탈바꿈시키자는 목표 하에 21년 말까지 운영되었었다. 더 자세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리즈의 첫 두 글들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이번주는 대망의 마지막 에피소드로, 지난주에 이어서 아호이 2.0의 개발 과정과 홍보 과정, 그리고 서비스 중단에 이르기까지 내가 배운 것들을 다루고자 한다. 커버하는 기간이 긴 만큼 분량이 많아질 예정이니 양해 바란다. 그럼 바로 시작해보겠다.
아호이 2.0 - 개발은 더 신속하게, 서비스는 더 안정적이게
성준이와 나는 우리가 인턴 일을 하며 새로 배운 지식들을 이용하여 아호이를 리부트 시켜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웹 서비스 개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도가 존재했기 때문에 고3때보다 안정적이고 신속하게 서비스 전체에 대한 설계를 끝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백엔드와 프론트엔드를 철저히 분리시켰다. 백엔드를 NodeJS로 개발하여 기능 단위로 API를 만들어놓은 다음, 프론트인 크롬 익스텐션에서는 axios를 이용하여 그 API들을 호출하게 했다. 분업에도 편리하고 코드의 가독성도 훨씬 높아졌다.
API 호출을 할 때 사용자 인증을 위해 토큰(JWT) 인증을 거치도록 했다. 고3때 만들었던 서비스에 비해 보안도 훨씬 강화되었고 유저의 로그인 상태를 일관성 있게 관리하기도 쉬워졌다 (예를 들어 한 페이지에서는 로그인 된 상태로 뜨고 다른 페이지에서는 로그인 안된 상태로 뜨는 것을 방지하는 일).
DB와 백엔드를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GCP)을 통해서 호스팅한다. 고3때는 닷홈에 PHP 파일을 올려서 개발했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서버를 관리하는 것도 훨씬 쉬워지고 DB와 연결하는 과정도 매끄러워졌다.
보통 퇴근 후 1~2시간 정도를 매일 할애하여 개발을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디자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프론트와 백이 제 기능들을 제대로 수행하기만 하는 버전을 구현했는데, 여기까지 약 2주 정도가 걸렸다.
이후로는 위 버전에 디자인을 예쁘게 입히는 과정을 거쳤다. 나나 성준이나 둘다 전문 디자이너가 아니다 보니 실제 웹 서비스같은 퀄리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내 눈에는 꽤 예쁜(?) 스킨을 만들어냈다. 이때 UI 뿐만 아니라 로고를 비롯한 BI를 전부 다 새로 짰었는데, 그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인 민우이다. 민우는 고등학교 때부터 각종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던 친구로, 유니크한 감성과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
민우의 도움에 힘입어 마침내 로고 디자인과 UI까지 개편한 아호이 2.0을 완성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1달 정도가 소요되었다.
마케팅 2.0 - 돌아온 베타 테스터들과 새로운 유저들
서비스가 만들어졌으니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을 차례였다. 1차 접근은 고등학교 때와 동일했다. 우리의 지인들을 대상으로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익스텐션을 뿌리고 피드백을 받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여기서 무언가를 더 해봐야 했다. 고등학교 때 지인/준지인 대상 마케팅까지 해보고 서비스가 시원찮게 끝났으니, 이번에도 그러고 싶지 않다면 좀 더 공격적으로 홍보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고3때보다 시간도 훨씬 많이 남아돌았겠다, 아호이에 대한 소개글을 작성하고 각종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글을 올렸던 곳 중에 한 곳이 클론 코딩 강좌로 유명한 노마드코더 커뮤니티였는데, 사람들이 꽤나 칭찬을 많이 해줬어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이밖에도 디스콰이엇 그리고 페이스북 그룹인 생활코딩에서도 아호이를 소개했다. 이런 소개글들이 엄청나게 대박이 나며 바이럴을 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통적으로 ‘좋은/재밌는 아이디어다’라는 피드백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중에서도 유별나게 기억에 남는 평가가 하나 있는데, 아호이를 커뮤니티에서 본 사용자 한 분이 내게 직접 이메일을 보낸 사건이었다. 아호이를 진심으로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후 우리 서비스를 궁금해한 외부인들이 조금씩 회원으로 유입되는 것이 보였다. 이들중 몇은 실제로 댓글을 지속적으로 달고 다니기도 했고 타 유저에게 친구 신청을 걸기도 하는 등 유의미한 활동 기록을 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중 내 친구들과 나만큼 아호이의 열성 유저가 된 사람은 없었다. 아마 고3 때와 마찬가지로 댓글을 다는 것 자체는 재밌지만, 자신의 댓글에 공감을 해주고 자신이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흥미를 잃는 것 같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하다가 뜬금없이 한번 영어권 유저들을 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전혀 위에 제시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뭐라도 더 해보자는 의지에서 비롯된 발상이었지 싶다. 애초에 난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고, 그 해 여름에 미국으로 건너가 새내기로 대학생활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이런 맥락들이 융합되어, 한글을 구사하는 유저가 아닌 영어 유저를 한번 노려보는 것도 유의미한 시도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레딧(Reddit)이었다. 레딧에서 마케팅을 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다: 어느 서브레딧에 광고할지와 광고글을 얼마나 진솔하게 작성할 수 있는지.
어느 서브레딧에 광고할지는 곧 어떤 관심사에 열광하고, 어떤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들에게 내 서비스를 노출시킬지와 같은 문제다. 이 문제에 좋은 답변을 내리기 위해서는 장시간 레딧을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 서브레딧 이름으로 후보군을 몇 곳(난 대충 이름에 IT나 Side Project, Web 등이 들어간 곳을 노렸다) 추린 다음에, 그 서브레딧들에 직접 들어가서 분위기를 살펴야 한다. 사람들이 홍보성 글에 호의적인지 민감한지(대부분의 서브레딧들은 홍보성 글에 대한 자체 정책을 가지고 있어서 이도 잘 참조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레디터가 얼마나 많은지, 내 서비스가 해소해주는 욕구와 잘 align 되어 있는지 등을 직관과 데이터를 통해 알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나는 r/SideProject라는 서브레딧에 아호이를 홍보해기로 결정한다. 결정의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가입 유저가 너무 많지도 않으면서 너무 적지도 않았다. 너무 적으면 충분한 홍보가 되지 않지만 너무 많으면 나같은 신생 레디터의 게시글은 묻힐 가능성이 있었다.
개발자나 IT 업계 종사자들이 상주하며 서로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공유하는 장소였다. 내가 타겟하는 유저층이 많은 커뮤니티이면서도 홍보가 자유로운 곳이라는 소리다.
이 다음에는 위에 적은 것처럼 ‘진솔한 광고글’을 작성할 단계가 왔다. 레딧은 귀신같이 ‘억지 컨텐츠’와 ‘찐 컨텐츠’를 구별해내는 커뮤니티다. 작성자가 정말로 어떤 이야기 혹은 창작물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그냥 clickbait 성 스팸글로 돈을 벌고 싶은지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홍보글을 쓰더라도 내 진심을 담아 쓰는 것이 좋다. 그런 류의 글들이 댓글도 더 잘 달리고 upvote (일종의 추천/좋아요)도 많이 받는다.
난 최대한 내 서비스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서비스에 대한 one liner를 게시물 제목에 넣고, 게시물 본문에는 아호이가 실제 작동하는 장면을 짧은 비디오로 넣었다. 게시물 댓글에는 설치를 위한 링크까지 첨부하여 재미를 느낀 레딧 유저들이 익스텐션까지 설치해보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이 게시물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큰 반응을 r/SideProject에서 불러왔다. 총 95개의 upvote와 33개의 댓글을 받은 것이다. 이게 많은 것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서브레딧 기준으로는 꽤나 많은 수치였고 실제로 한동안 서브레딧의 Hot 순위권에 아호이가 머물기도 했다.
댓글들 또한 알찬 내용들이 많았다. 칭찬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기능에 대한 제안들로 넘쳐났다. 최소한 이 아이디어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뻐졌다.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정말 많은 마케팅 인사이트를 가져간 댓글이 있었는데, 아직도 이 댓글을 써주신 dizmass 님에게 감사하다.
대충 요약하자면, 이 댓글은 내가 고질적으로 고민해오던 “어떻게 하면 한 단체/연결되어 있는 사용자 그룹을 일괄적으로 아호이에 가입시켜서, 신규 유저도 수다를 떨 사람이 충분하도록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한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싶은 욕구가 존재할 만하지만 댓글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웹사이트를 찾아라. 그런 다음 그 웹 사이트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로 홍보를 좁혀서 해라.
그런 웹 사이트를 찾고 싶다면 여러 서브레딧을 돌아다녀 봐라. 서브레딧 중에서 이상할 정도로 외부 링크로 향하는 게시물이 많고, 그 게시물들에 많은 댓글이 달린 곳을 찾아봐라. 예를 들어, dizmass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관련 서브레딧을 자주 보는데, 그곳에서는 외부 기사/뉴스 사이트에서 가져온 축구 관련 글에 대한 토의가 자주 발생한다. 이 서브레딧 사람들이 레딧 대신 아호이를 이용해서 축구 뉴스 웹사이트에서 곧바로 대화를 나누는 시나리오가 꽤나 괜찮게 들리지 않는가? 이런 그룹들을 찾아서 타겟해봐라.
아호이를 만들기 전에도 그로스 해킹이나 마케팅에 관한 글은 정말 많이 읽었었지만, dizmass 님의 댓글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한 기법들을 내가 직접 적용해볼 생각은 추호도 못하고 있었다. 눈이 뜨이는 기분이었다. 이전까지는 막연히 수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아호이에 가입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이때부터는 우리에게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는 그룹을 찾은 다음 일괄적으로 아호이에 가입시켜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내가 pinpoint 한 그룹은 두 개 정도가 나왔다.
미국 대학 입시 준비생: 미국 대학 입시 준비생들은 각 대학 홈페이지에 있는 웹 페이지 자료들에 대해 의논할 내용이 많다. 장학금 관련 페이지에서 장학금 관련 궁금증이 떠오른다거나, 세부 전공 관련 페이지에서는 전공 커리큘럼 관련된 의논을 한다거나. 이런 내용들이 다 지원서를 작성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대학 홈페이지의 일반 컨텐츠들에는 댓글을 달 수 없게 되어 있다. 만약 아호이를 이용해 대학 홈페이지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면 쓸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영화 매니아들: r/imdb라는 서브레딧이 있는데, 영화 리뷰 사이트이자 커뮤니티인 imdb의 컨텐츠들에 대해 영화 애호가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실제 imdb 웹사이트의 링크가 많이 올라왔었는데, 위에서 dizmass가 말한 조건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더 파고들어보니 imdb 웹사이트의 댓글 기능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레딧에서 토의를 많이 하던 것.
이중 우리는 첫 번째 그룹인 미국 대학 입시 준비생들을 우선적으로 노려보기로 한다. 나와 친구들이 미국 대학 입시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 만큼, 그들의 정서와 욕구를 더 잘 이해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레딧에는 r/ApplyingToCollege (이하 a2c) 라는 유명 서브레딧이 존재한다. 이곳에서는 미국 대학 입시에 관한 온갖 정보와 유머, 조언 등이 오가는데, 우리는 이곳을 목표로 삼는다. a2c에 아호이를 공개하기 이전, 아호이 유저가 많아보이도록 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주요 대학 웹사이트들에 댓글들을 달고 다녔다. 살짝 슬플 수 있지만, 레딧이 초창기에 사용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이라고 한다(이들도 초기 유저가 너무 없어서 공동 창업자들이 유령 계정을 만들어 게시물을 찍어냈다는 👨💻) .
이렇게 준비를 끝마치고 a2c에 아호이를 멋있게 런칭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dizmass님이 제안한 그로스 해킹 전략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레딧에서는 서브레딧의 경향성을 우선적으로 분석해야한다는 기본 수칙을 잊었던 것이다. a2c는 본질적으로 대입 정보 공유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홍보성 글이나 프로그램 설치를 유도하는 글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속적으로 그곳에서 아호이를 홍보하는 데에 실패했다. 물론 홍보를 시도했을 때에도 사용자들의 반응이 r/SideProject에서만큼 뜨겁지 않기도 했고.
이때가 아호이 2.0 런칭 이후 약 4~5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계절은 어느새 한여름이 되어 있었고 나와 친구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1학년을 시작하기 직전. 개인적으로 많이 지치기도 했고 입학 준비로 바빠지게 되어 점점 아호이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마무리
물론 미국에 건너오고 나서도 아호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증거 중 하나로 그 해 가을에 진행했던 프로덕트 헌트 런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해볼 심산으로 어렸을 때부터 꿈꿔오던 프로덕트 헌트에 내가 만든 걸 한번 올려보기로 한 것인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PH에 무언가를 올려보는 것이 아예 처음이다보니 어떻게 하면 upvote를 많이 받을까 고민하지 않은 점도 컸고(나중에 찾아보니 올리기 적합한 시간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썸네일이나 one-liner 등도 다 고려해야하더라-이제 PH는 너무 많은 제품이 올라오는 사이트가 되어버려서 작정하고 제출하지 않으면 관심을 받기 어렵다), 애초에 아호이의 유동 사용자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PH에 올린다고 무언가가 달라질까 헛된 기대를 품은 것부터가 실수였던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사용자의 인정을 받은 서비스가 아닌데 단순히 upvote를 많이 받고 반짝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여 그 본질이 바뀔까. 대신 PH 런치라는 경험 자체는 꽤 유효한 경험이었다. 다음번에 다른 서비스를 가지고 런칭할 일이 생긴다면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H 런치 이외로는 내가 다니는 학교 내에 아호이를 전파시켜보려는 고민을 조금씩 하기는 했다. 학교 레딧에도 베타 테스터를 구한다는 글을 올려보고, 내 친구들 몇명에게 사용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열성 유저를 확보하지 못했다.
우리 팀은 초기에 GCP 클라우드 설정 자체를 사용자 수와 무관하게 상당한 비용이 매달 고정적으로 발생하게 해 놓았다. 그래서 달마다 약 10만원 정도를 개인적으로 지불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처음 건너갈 때만 해도 “아호이를 계속 개선시키지는 않더라도 서버는 끝까지 열어놓자”라는 마음이었다. 일종의 오기이자 꿈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현실을 스스로의 머리에 각인시켜놓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의 부진과 유학생활 도중 생활비를 아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겹치게 되자(힘들었던 일이 있었던 것 아니고 여행을 몇 번 다니다 보니 경비 때문에 그랬다) 굳건했던 오기가 맥없이 무너지게 된다. 21년도 말이었을까, 22년도 초였을까, 더 이상 서버 비용을 내는 것이 어려워져 아호이 서버를 멈추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호이의 공식적인 여정은 ‘사용자 확보 실패’라는 사유로 막을 내리게 된다. 내가 기대했던 엔딩은 아니었지만, 배운 것과 즐거운 일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작은 서비스가 어디까지 갈지 전혀 몰랐었는데, 끝낼 때 와서 보니 내 삶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회고, 그리고 최후의 변론
이게 뭐 몇백, 몇천의 유저를 모으는 데 성공한 서비스도 아니고 진짜 좋게 쳐줘야 잘 만든 사이드프로젝트 정도 되기 때문에 거창한 회고거리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정말 확실하게 배워간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본인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일을 한다면 진짜 어디로든 나아가게 되어있다. 단, 그냥 어제 하던 일을 오늘도 기계적으로 하는 거 말고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를 고민하며 하는 일. 난 사용자를 어떻게 모을지 막막할 때 무작정 레딧에 글을 올려서 생각지도 못한 조언을 받을 수 있었고,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마케팅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볼 수 있었다.
이처럼 당장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모를 때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도를 닥치고 다 해보는 것이 정답이다. 내가 세상을 향해 인풋을 던지면 어떤 식이든 아웃풋을 받게 되어 있다. 그 아웃풋을 통해 피봇을 할 수 있게 되든, 새로운 타겟 유저층이 생기든 간에 이전보다 서비스가 0.001%는 나아진다.그래서 요즘따라 이때 정말 전력을 다했다면 어땠을까?가 궁금해지긴 한다. 물론 내가 아호이를 진짜 ‘창업’으로 생각하고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은 맞지만. 대학교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전단지 나눠주면서 아호이 설치해달라고 하고, 틱톡에 바이럴 될 때까지 광고 영상도 올려보고, 진짜 과제 다 째끼면서 아호이 기능 코딩하고 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0.001% 씩 나아지고 나아지고 해서 뭔가 희미하게라도 굴러가고 있지 않았을까.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
아이디어의 문제였나 실행의 문제였나?
나중에 차츰 알게 된 것이었지만 세상에는 아호이와 상당히 유사한 서비스들이 이미 많이 나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류의 아이디어를 원한다는 반증-물론 잡스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뭘 원하는지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모르지만). 이와 더불어 아호이를 처음 본 사람들의 평가가 긍정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론 상의 아이디어 자체는 분명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만한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한다. 단지 사람들이 크게 느끼는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솔루션같은 아이디어는 아니었기 때문에 organic하게 유저를 끌어모으지 못했고, 그래서 네트워크 효과도 얻지 못했고. 만약 정말 좋은 GTM Strategy나 마케팅 아이디어가 있었다면 실제로 성공할 서비스가 되지 않았을까? 즉 아이디어보다는 실행의 문제가 크지 않았나 싶은거다. 일례로 BeReal같은 서비스도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플랫폼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GenZ들 사이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정말 잘 펼쳐서 끝내주는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했듯이.
창업의 제1원칙은 문제를 해결하고 make something people want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사업들도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핀터레스트(Pinterest)를 생각해보라. 우리가 실제로 개발 당시 롤모델로 삼았던 것도 핀터레스트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낸 회사임은 분명하지만, 초창기에는 핀터레스트도 자신들이 무언가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고, 네트워크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을 거다. 실제로 핀터레스트가 고생을 하며 찾아낸 초창기 사용자 그룹은 동네에서 모여서 뜨개질하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이분들이 온라인에서 마음에 드는 공예작품 사진을 저장하고 공유하는 것을 도우면서 성장한 것.
이와 같이 어떤 성공한 서비스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사람의 취향을 자극하고, 소소한 재미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사용자들의 삶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스며들면서 성공하기도 한다. 이런 류의 성공이 문제를 해결해서 이루는 성공보다 수적으로 훨씬 적을 것임은 안다. 그래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서비스가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놓아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새삼 요즘 창업 관련 글들을 보면 무조건 아이디어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들만 많은 것 같아서…). 자신이 그 서비스를 통해 들여다본 세상의 모습이 있고, 그 풍경에 확신이 든 것이라면, 정말 정말 정말 어렵겠지만 한번쯤 실행에 전력을 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수도.창업은 내가 할 일이다.
3주에 걸쳐 아호이를 만들었던 1-2년간의 시간을 회상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창업을 하려는 이유 중에 부와 명예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한번 사는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의미있게 보내고 싶은 바람의 비중도 적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며 성과에 함께 기뻐하고, 계속해서 사용자들과 소통하고 생각한다. 순수한 즐거움이 따를 뿐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면면을 정말 피부로 느끼며 배울 수 있다. 원래도 창업을 하고 싶어했지만, 아호이를 겪으면서 정말 내가 이 선택을 내리고 싶어함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제발 군대만 전역하자 🥲
시리즈를 끝내며
이렇게 하여 길고 길었던 아호이 시리즈를 종료하게 되었다. 매주 똑같은 소재를 다뤄서 지루했을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긍정적인 피드백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뉴스레터 작성을 떠나서 이 시리즈는 내 개인적인 삶의 기록물로도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10년이 지나도 다시 읽어보며 웃음짓게 될 글들.
다음주부터는 다시 원래 뉴스레터에 들어갈만한 소재들을 들고 찾아뵙도록 하겠다! 그럼 다들 안녕히.
멋진 프로젝트네요! 우연히 저도 같은 아이디어로 구글링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상세히 프로세스를 남겨주셔서 정말 재밌게 읽으면서 간접공부했습니다. 결국은 어떻게 더 유저를 불러모으냐가 관건인 것 같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걷다보면 어딘가에 닿고 그길이 또 다른 멋진 길로 이어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통합된 코멘트 시스템이라니 정말 멋집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제 개인적인 아이디어로는, 친한 사람들끼리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활용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 주변에 있는 지인들은 대체로 카카오톡 톡방이나 소규모 디스코드 채널 등을 통해 재밌는 자료나 정보글 같은걸 공유하곤 하는데, 이런 메신저 형태의 플랫폼에 올라온 글들은 대체로 시간이 지날수록 위로 올라가버리고 찾기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ahoy를 활용한다면 소규모의 지인들이 자기들이 관심을 가지고 봤던 웹페이지들에 ahoy 자체 댓글들을 반영구적으로 남겨둘 수 있고, 그건 시간이 지나도 계속 확인할 수도 있죠.
위키 사이트나 게시판 비슷하게, 최근에 댓글이 작성된 페이지 순으로 목록 형태로 볼 수 있는 페이지도 마련해준다면 해당 그룹에 나중에 합류한 사람들도 follow-up 하기 쉬워지고, 서양의 포럼 엔진 비슷하게 "예전에 작성되어서 묻혔던 댓글"도 거기에 누군가 답글을 달아둔다면 다시 끌올이 될수도 있구요.
개인이 사설 서버 형태로 운영이 가능한 On-premis 형태로 배포한다면 유지비의 부담도 유저에게 넘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소규모 그룹 형태로 교류하는 인터넷 지인들이 많아서 이런 서비스를 실제로 활용해보고 싶네요. 나중에라도 어떤 형태로든 업데이트 혹은 코드 공개가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