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제가 한번 가봤습니다

강소국의 성공비결을 찾아 떠나다

안녕하세요 :) 조성윤입니다. 오늘로 세 번째로 Upwind 독자분들께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덕행이의 친구인 제가 Upwind를 맡게 된 사연에 대해선 저저번과 저번 레터를 참고해주세요.

우선 매주 일요일에 발행하려던 뉴스레터를 오늘 늦게 발행하게 되어 양해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2월 22일부터 27일까지 싱가포르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여행 준비에 이후 정리까지 정신이 없다 보니 일주일이라는 간격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대신 바로 제 여행에 대한 글을 여러분께 보내드리려 합니다. 이번 여행은 사실 단순 관광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성공 비결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스스로의 도전이었는데요, 이를 글로도 풀어내면 독자분들께 의미 있는 간접 경험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제 관점이 듬뿍 담긴 글을 쓸 자신도 있었고요. 일종의 현장 취재인 셈이죠. 그럼 이번 주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원활하고 간결한 내용 전달을 위해 아래 본문부터는 평어로 진행하는 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

---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2021년 기준 $72,794로 우리나라의 $34,997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고, 경제 규모 대비 투자유입액인 FDI는 아시아 1위이다. 동시에 부패지수도 세계 최상위권이며, 포춘 500대 기업 아시아 본부가 가장 많이 위치한 아시아 국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서울만 한 크기의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2배 이상 잘 사는데, 안전하고 청렴하며 기업하기 좋기까지 하다는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싱가포르는 1965년에 독립하여 이제 겨우 58년째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만큼이나 엄청난 고속성장을 이룬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항상 싱가포르의 비결이 궁금했었다. 책이나 인터넷에 나온 글이 아닌 생생한 현장의 경험을 얻고 싶었다. 여행자로서 내가 두 눈과 발로 느꼈던 싱가포르의 가장 대단하고 인상 깊었던 점 3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조화롭게 공존하는 문화적 다양성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돌아가는 비행기에서까지 가장 도드라졌던 점은 문화적 다양성이다. 싱가포르의 인종적 구성은 중국계 76%, 말레이계 15%, 인도계 7.5%, 기타 1.5%이다. 그렇지만 주로 내가 중심지와 시내를 돌아다녀서 그런지 체감상 5:2:2:1 정도의 비율이었다. 특히 상업지구로 갈수록 중국계와 서양인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길가에서 찍은 아래 현수막 사진이 보여주듯, 싱가포르는 그 어떤 인종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다문화 사회이다. 그 문화적 다양성을 여행 기간 내내 몸소 체감하며,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한 국가를 이루며 살 수도 있음을 느꼈다.

여러 언어로 표기된 현수막. 싱가포르는 공용어만 4개(영어, 중국어, 타밀어, 말레이어)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정말 대단한 점은 문화적 다양성 그 자체보다도, 그 다양성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유지되는 상태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국가는 많지만, 그 다양성이 잘 유지되는 곳은 드물다. 미국에서는 빈곤한 흑인층은 도시 할렘가에 산다거나 중산층 백인은 교외 지역에 산다는 인식이 있다. 다른 인종이 서로 섞여 사는 일이 드문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인종에 따른 지리적 분절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차이나타운, 아랍 스트리트 등 관광지 중심으로 발전한 특정 인종 기반 지역이 있긴 하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주로 종교적 시설(모스크, 절, 사원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에 불과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싱가포르의 월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는 래플스 플레이스역을 지나가던 때였다. 4~5살로 보이는 한 무리의 유치원생이 인솔 교사들 사이에서 무리를 지어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백인 아이와 중국계 아이, 인도계 아이와 흑인 아이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뒤편의 초고층 마천루들과 오버랩되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저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으며 성장할 수 있는 한 싱가포르는 지금의 발전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성장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성인이 된 후 전혀 다른 가치관과 태도를 가지게 됨은 당연하다.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나 민족의식은 덜 하겠지만, 타인과 공존하는 법, 갈등을 극복하는 법을 더 수월하게 배울 것이다. 그랬을 때 더욱 포용적인 사회가 탄생하는 것은 물론이다.

싱가포르가 다민족 국가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와 동시에 통합된 사회라는 사실은 겪어보기 전까진 몰랐다. 특히나 또 다른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 갔을 때보다 확연히 민족 간 경계가 덜 하다고 느꼈다.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전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와 무역을 할 수 있는 저력이 그 다양성에 있음을 깨달았다.

직관적이고 손쉬운 교통

다양성 다음으로 체감했던 점은 바로 교통이었다. 아무래도 홀로 여행하다 보니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할 일이 많았다. 서울도 대중교통으로는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싱가포르 교통은 서울과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몇몇 부분에서 더 대단했다.

대표적으로, 지하철 환승 절차가 훨씬 간소했다. 우리나라 지하철의 경우, 2호선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려면 개찰구를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건너가 아예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싱가포르 지하철은 서로 다른 호선이라도 마치 우리나라의 같은 호선 다른 방향 기차가 붙어있는 것처럼 내리자마자 바로 반대편에 위치한다. 간혹 환승구역이 다른 곳에 있는 경우라도, 아래 사진처럼 에스컬레이터 하나만 타면 바로 도달할 수 있다. 환승할 때 카드를 따로 찍지 않아도 됨은 물론이다. 그리고 싱가포르 지하철은 한 번에 그리 많은 사람이 타지 않는지 지하철 길이가 서울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는데, 대신 조금 더 자주 온다고 느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탑승자의 대기 시간을 줄여주고 지하철 내부가 덜 혼잡하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내부 모습. 자세히 보면 위와 아래 각각 노선이 하나씩 있는데, 에스컬레이터 하나만 타면 바로 환승할 수 있다.

한편, 지상의 자동차 도로에서도 우리나라와 다른 부분을 목격할 수 있었다. 좌측통행이란 점도 독특했지만, 어느 순간 대부분의 도로가 일방통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양방통행 도로는 중심지 외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일방통행이라면 이동할 때 조금 돌아가야 할 순 있겠지만, 사거리에서 신호가 더 빨리 순환될 테니 결과적으론 이동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버스를 타고 가는 와중, 우리나라였으면 신호 받는 데 한참 걸렸을 주요 사거리에서도 신호 대기시간이 거의 없다고 느꼈다. 이는 고스란히 교통체증으로 인한 시간 소모나 스트레스가 덜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싱가포르 교통의 위 장점을 우리나라 교통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데는 내가 잘 모르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분명히 있을 테다. 서울은 싱가포르보다 인구도 두 배 가까이 많고 노선도 훨씬 복잡하다. 산이 많은 지형도 분명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손쉽고 빠른 교통은 엄청난 장점을 가져다준다. 단순히 이동시간 단축에 그치지 않는다. 이동시간이 단축되면 동일한 시간 안에 생활할 수 있는 반경이 늘어난다. 모든 사람이 2배 빠른 속도로 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면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범위가 2배 확장되는 것이다. 물리적인 확장은 관계의 확장을 의미하고, 곧 성장으로 연결된다. 우리나라도 보다 손쉬운 대중교통 이용이나, 교통체증을 줄일 방법에 대해서 고심해보면 좋겠다.

한편, 싱가포르가 교통 발전에 역점을 두고 있음은 정부 구성에서도 알 수 있다. 우연히 시내 전광판에서 정부 공익광고를 보고 문득 싱가포르 정부 조직도가 궁금해 우리나라와 일대일 비교해보았다. 싱가포르는 총리실 제외 15개의 부처(Ministry)가, 우리나라는 18개의 부처가 있다. 이 중 통일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는 그 특성상 우리나라에만 있고, 대신 우리나라의 한 개 부처가 싱가포르에서 두 개의 부처로 나누어진 경우가 있었다. Ministry of Communications and Information(MCI)과 Ministry of Culture, Community and Youth(MCCY)로 나누어진 문화체육관광부와, Ministry of National Development(MND)와 Ministry of Transport(MOT)로 나누어진 국토교통부가 그것이다. 즉, 문화와 국토교통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보다 싱가포르가 더욱 세세하고 집중적으로 관리한다고 볼 수 있겠다.

정부 조직이란 한 나라의 모든 일이 분류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정부 조직과 위계를 보면 그 나라가 집중하는 사안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가 다양한 인종 간 융합 및 소통, 그리고 발전된 국토와 교통 인프라를 성취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정부 조직도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문화적 및 인종적 통합,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적 인프라를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어느 곳과도 비견되지 않는 볼거리 및 건축

내가 발견한 싱가포르의 또 다른 대단한 점은 특별한 경관이었다. 잘 알려진 나이트 사파리나 센토사 섬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처럼, 싱가포르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관광 거리가 많다. 유독 싱가포르의 볼거리에서 나는 ‘특별함’과 ‘대체불가능함’을 느꼈다. 특히 내가 직접 찍은 아래 사진의 Cloud Forest라는 수직정원에서 더더욱 그랬다. 마치 라퓨타를 연상하게 하는 높은 정원인데, 요즘엔 아바타2 개봉을 기념해 영화와 연계하여 곳곳에 아바타 컨셉 조형물과 체험관을 설치해두었다. 둘러보는 내내 ‘전 세계 어딜 가도 이런 풍경은 못 보겠구나’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 정도로 특이하고 신비한 풍경이었다. 시각적인 웅장함은 물론이고, 사소한 디테일(관람 동선에 아바타에 나온 동식물 모형을 전시하는 등)이나 판도라 숲 속 분위기를 조성하는 BGM 등 여러 요소가 합쳐져 정말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내가 겪은 오프라인 경험 중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싶었다.

동시에 감탄했던 점은, 자연과 녹지화에 대한 싱가포르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노력이 Cloud Forest에 드러난다는 것었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부터 녹지 보급화 정책인 Clean & Green 정책을 실시했다. 전 국토 어디에서나 쉽게 녹지를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든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공항, 지하철역, 길거리, 호텔 등 많은 곳에서 화분이나 나무, 숲 등 친환경적인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었다. 도심 곳곳에 공원이 많기도 하다. 대표적인 공원으로 바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뒤편에 있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있는데, Cloud Forest는 바로 그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안에 있다. 즉, 싱가포르 전역의 녹지화 맥락 - 가든스 바이 더 베이 - Cloud Forest로 이어지는 일련의 오프라인 체험 과정이 일관되었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Cloud Forest는 한 나라의 대표적인 관광거리로서 가져야 할 독특함을 가졌고, 이에 더해 녹지화라는 국가 정책과도 연계되어 전체적인 국가 이미지와의 통합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그야말로 압도당했던 수직정원, Cloud Forest

관광지역이 아니더라도, 싱가포르 길거리를 걷다 보면 ‘저기도 관광지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건축물이 많다. 이젠 싱가포르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마리나 베이 샌즈가 대표적이다. 배 모양 수영장을 세 개의 건물 위에 얹는다는 발상을 그 어떤 국가에서 실행할 수 있었을까? 특히나 싱가포르처럼 국영 기업이 경제의 중심이 되고 제1여당이 몇십년 째 정권을 쥐고 있는 준독재국가에서는 보통 부패가 만연하고 혁신이 저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정반대로 혁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공공 부문이 발전했다. 마리나 베이 샌즈를 보면 마치 공무원과 국영기업이라고 해서 꼭 고인물만은 아님을 증명하는 것 같다.

꼭 유명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싱가포르 길가를 걷다 보면 건물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ㄹ자 모양으로 지은 건물, 기둥 단 네 개로 떠받치고 있는 건물, 위층으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건물 등 가상에만 존재할 것 같은 건물들이 시내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여행자인 나로선 걸을 때마다 새롭고 놀라운 풍경이 나오니, 매일 3만 보씩 이곳저곳 걷다가 발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아래 사진의 Parkroyal Collection이 대표적이었는데, 그림자에 가려져서 잘 보이진 않지만 건물 사이에 거의 동일한 높이의 정원들이 즐비해있다. 앞서 언급한 녹지화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며, 동시에 창의적인 건축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내가 찍은 Parkroyal Collection 호텔 사진. 구글링 해보면 더 멋있는 사진들이 나온다

싱가포르의 창의적인 건축은 결국 정부 규제의 최소화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건축 규제가 심한 것으로 유명한 우리나라는 그 결과로 죄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들과 스카이라인이 형성됐다. 반면 최소한의 규제만 남겨놓은 채 다양한 형태를 장려한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만의 경관을 형성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자본과 건축가가 유입되는 선순환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내가 건축가라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한국보다 싱가포르에서 짓고 싶지 않았을까. 이처럼, Cloud Forest 같은 관광거리와 마리나 베이 샌즈 같은 창의적 건축이 합쳐져 싱가포르는 관광객에게 세계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것들을 우리나라로 갖고 올 수 있다면…?

글 초반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가 전세계에서 당당히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똑같이 자원과 땅이 부족한 나라로서 우리나라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위 세 가지는 그러한 요소를 찾으려는 노력의 결론이다.

그러나 세 가지 요소가 싱가포르가 발전한 가장 큰 이유라고 물으면 그건 절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하나만 꼽자면 아마 지리적 위치 아닐까. 국가의 발전에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싱가포르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그 사실을 느꼈다. 말라카 해협의 한가운데 위치해 동쪽으론 중국과 동아시아를, 서쪽으론 유럽과 중동, 인도를 갈 수 있다. 해상 중개 무역을 하기 정말 좋아 자연스럽게 동남아시아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죽하면 영국이 싱가포르를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와의 조약을 통해 수마트라섬의 지배권 주장을 포기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싱가포르 독립은 1965년이지만, 경제 발전의 기반은 1800년대 초반부터 형성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는 지정학적 이점, 영국의 식민지배를 통한 이른 발전, 그리고 근현대에 와선 리콴유 수상의 미래지향적 리더십 정도가 싱가포르를 부국으로 만든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중 어느 하나도 우리나라가 당장 차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리적 위치를 바꿀 수도, 과거를 다시 쓸 수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언제까지나 지리적 위치나 과거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가 그러한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았고, 싱가포르의 사례에 비추어 봤을 때 크게 두 가지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첫 번째로, 문화적 그리고 인종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전에 읽었던 강자의 조건이라는 책에서도 느꼈듯이, 역사적으로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통합을 꾀한 제국은 세를 확장했다. 로마, 대영제국, 몽골제국, 미국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다양성 추구를 그만둔 순간, 몰락이 시작됐다. 국가 안에 다양성이 존재할 때 더욱 포용적인 사회가 되어 시너지가 생김은 명확하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하는 시대엔 더더욱 그렇다.

물론 우리나라에선 이민을 반대하는 여론이 아직 다수이고, 이민 확대 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경제특구를 지정하는 형식으로 차근차근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사실 싱가포르도 서울 만한 크기에서 그 많은 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작은 규모로 시작해 확장해나간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찾아보니 서울시에서 여의도를 국제금융특구로 만든다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을 본뜬 서울투자청도 설립했다고 하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지는 모르겠다.

특구를 만든다면 영어의 사용 빈도가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리라 생각한다. 싱가포르를 다녀온 후 더욱 느낀 것이지만, 외국인 입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든 생활을 하든 언어가 중요하다. 내가 일본이나 대만 같은 가까운 나라보다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고자 한 것도 영어 사용국이라는 점이 컸다. 단 4일 머무는 내 입장에서도 그랬는데, 직원을 파견 보내거나 회사를 설립해야 하는 경영자 입장에서는 더더욱 영어 사용국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이 영어만 써도 살 수 있고, 한국의 여타 지방과는 다른 문법으로 돌아가는 지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당 지역에 교통도 확충하고 법인세도 파격적인 수준으로 낮추면 훨씬 더 많은 자본과 인재가 유입될 것이다.

더 길게 보자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수도권 집중 및 지역 균형 발전을 해결할 돌파구가 이민에서 나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차피 자국민이 더 이상 이동하지 않는 현실이라면, 지방에 외국인을 받아들여 인구통계학적 문제에 해법을 꾀하는 것도 가능하단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는, 전반적인 국가 경험 차원에서 차별화되는 우리나라만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게 마리나 베이 샌즈나 Cloud Forest 같은 볼거리가 되었든, 수많은 창의적인 건물이 합쳐져 완성된 독특한 스카이라인이 되었든 말이다. 한국행 비행기에 탔을 때 내 머릿속에 남은 싱가포르의 이미지는 ‘자연과 첨단 도시가 어우러진 살기 좋고 특별한 나라’였다. 이 순간, 제품에 UX(User Experience)가 있고 브랜드에 BX(Brand Experience)가 있듯이, 한 국가를 방문한 관광객 혹은 이민자에게도 National Experience, NX가 생긴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NX가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싱가포르 고유의 경험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Cloud Forest의 수직정원을 과연 세계 어떤 곳에도 또 볼 수 있을까? 힌두교와 불교와 이슬람교 사원을 몇 키로 반경 내에서 볼 수 있는 나라도 싱가포르 외에 몇 군데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유적을 전시하거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전 세계 어딜 가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대표적 볼거리인 남산타워나 한옥마을 등은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만의 무언가의 예시를 들자면, 한강은 파리의 센강이나 미국의 허드슨강과 비교했을 때 매우 폭이 넓은 편에 속한다. 즉 한강만 한 폭을 가진 강이 서울만 한 크기의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광경은 오직 우리나라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한강을 가로지르는 짚라인이나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그 풍경은 오직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관광유인이 되지 않을까? 이처럼 남들과 다른 독특한 무언가를 떠올리는 발상이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공무원 사회에선 쉽지 않을테니, 혁신이 발현될 수 있는 구조적인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싱가포르를 돌아보며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간절함’이었다. 가든스 더 베이의 웅장한 슈퍼트리 쇼나 입이 떡 벌어지는 마리나 베이 샌즈, 엄청난 크기의 Cloud Forest를 볼 때마다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에서 봤던 리콴유 수상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 발달되지 않은 서울만한 땅덩이를 가진 채 58년 전 독립했던 그의 막막함은 어땠을까? 그로부터 지금 이 발전된 나라를 이룩할 때까지, 싱가포르 곳곳의 관광거리와 시설에서 리관유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사람들이 가졌던 간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소국의 간절함이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 어떤 다른 나라도 넘보지 못할 무언가가 탄생함을 싱가포르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단서를 싱가포르에서 조금이나마 엿보았다.

---

재밌게 읽으셨나요? 저의 싱가포르 여행기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을 꾸준히 받아보고 싶으시다면 밑의 버튼을 눌러 제 뉴스레터 ‘Sung’s En-Vision’도 구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