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다뤘던 크리스 딕슨의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내용의 글을 찾아 가져와봤다. 제목은 <잘못된 언덕 오르기(Climbing the wrong hill)>. 이 사람도 글재주가 참 좋은 것 같다. 글의 호흡이 짧지만 분명하고 인상깊다. 나눔선 아래부터가 딕슨이 쓴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TL;DR
어째서 야망있고 똑똑한 사람들 중 대다수가 자신이 장기적으로 야망이나 비전을 지니지 않은 업계(잘못된 언덕, wrong hill)에 남아 시간을 낭비하는가?
인간은 현재 위치에서 내려가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이 다음에 내딛을 발걸음이 반드시 위로 향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본성이 있기에, 지금 오르고 있는 언덕이 가장 높은 것이 아니더라도 일단 오르는 것이다.
가장 높은 언덕을 찾고 오르고 싶다면, 처음에는 무작위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다가 가장 높은 언덕이 무엇인지 찾아냈다면, 지금 오르고 있는 언덕이 있다 하더라도 과감하게 내려와서 가장 높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라.
나는 1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거대 투자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총명한 어린 친구를 한 명 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월가를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는 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좋은 일이다!). 그가 최근 이러한 자신의 결정을 상사에게 알렸는데, 그러자 상사는 그를 은행에 남게 하기 위해 온갖 화려한 언변을 동원해 설득했다. 상사가 이르기를, 만약 그 친구가 은행에 남는다면, 연봉도 인상받고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기술 업계로 넘어간다면,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단다. 그 친구는 지금은 다시 금융권에 남는 선택을 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본인이 장기적으로 금융과 관련한 야망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이와 유사한 상황에 놓인 많은 잠재적 직원들을 만났다1. 내가 그들에게 아주 뻔한 질문을 물었을 때: “당신은 10년 후에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싶습니까?” 모두가 빠짐없이 “기술 스타트업을 하나 창업했거나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요.”라고 답했지만 대부분이 실제로 스타트업에 합류하지는 않고 결국 자신들의 현재 진로에 남기를 선택한다. 몇 년이 흐른 뒤에,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원래 직업을 그만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그들이 자신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지닌 장기적인 야망과 가까워지는 것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업계에서 몇 년을 허비한 후이다.
어째서 똑똑하고, 야망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장기적인 야망을 지니고 있지 않은 분야에 계속 남아서 일하기를 선택할까? 나는 그들이 저지르는 이런 실수에 대한 좋은 비유가 컴퓨터 과학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컴퓨터 과학의 고전적인 문제 중 하나로 언덕 오르기(hill climbing)라는 것이 있다. 당신이 굴곡진 언덕 지형 위 임의의 위치에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현재 지점에서 오직 반경 몇 인치 정도의 시야만 확보된다고 하자 (안개가 끼거나 했다고 치자). 목표는 가장 높은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알고리즘을 떠올려 보라.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매 순간에, 당장 당신이 향할 수 있는 방향 중 가장 당신을 높은 곳으로 데려다 주는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이 방법의 리스크는 만약 당신이 비교적 더 낮은 언덕 주위에서 시작한다면, 가장 높은 언덕의 꼭대기가 아닌 더 낮은 언덕의 꼭대기로 올라가 버릴 것이라는 점이다.
이 알고리즘을 조금 더 정교하게 바꾼다면, 내딛는 발걸음마다 약간의 무작위성(randomness)를 추가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좀 많이 무작위적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작위성을 감소시키는 거다. 이렇게 하면 당신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를 마음을 먹고 집중하기 이전에 비교적 높은 언덕 주위에서 알짱거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다른, 그리고 일반적으로 더 나은 알고리즘은 당신이 스스로를 지형의 아무 곳에나 반복적으로 떨어뜨리고, 간단한 언덕 오르기를 해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한 발짝 물러서서 어떤 언덕이 가장 높은 것이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직종을 옮기고 싶어하는 어린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는 자신이 놓인 지형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이점을 지닌다. 그는 자신이 최종적으로는 현재 올라가고 있는 언덕 말고 다른 언덕 꼭대기에 오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혹은 그렇게 믿고 있거나)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현재 서 있는 곳에서 자신이 오르고 싶어하는 더 높은 언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올라가고 있는 언덕이 지니는 유혹은 강력하다. 인간은 자신이 딛는 다음 발걸음이 위로 향하는 것이 되기를 바라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의 어린 친구는 행동경제학자들이 지적하는 흔한 덫에 걸린다: 사람들이 시스템적으로 단기적 보상을 장기적 보상보다 과대평가한다는 덫에. 이러한 효과는 야망이 큰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야망꾼들의 야망이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바로 다음에 내딛을, 위로 향하는 발걸음을 포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아닐까.
커리어 초창기를 거쳐가고 있는 사람들은 컴퓨터 과학으로부터 교훈을 얻어가야만 한다: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일찍부터 그럴수록 좋다), 지형 속 새로운 위치들에 스스로를 무작위적으로 떨어뜨리다가, 가장 높은 언덕을 찾게 되면 지금 올라가고 있는 언덕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가장 높은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라. 지금 올라가고 있는 언덕에서 당신이 딛을 다음 걸음이 당신을 현재로서는 높게 올려주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필자인 딕슨과 함께 기술 업계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는, 즉 기술 업계로 넘어올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